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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장문 주의)
게시물ID : wedlock_136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칫솔과치약
추천 : 14
조회수 : 278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0/07/10 15: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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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보고 배우고 자랐으니까요.

국민학교 졸업 전에 부모님과 헤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요.
어린 나이에도 두 분을 보고 있으면 두 분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지더란 말이죠.^^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할머니가 우선이셨고,
할머니께서는 항상 할아버지가 우선이셨습니다.
어쩌다 삼계탕이라도 하면 사랑스런 손자에게 닭다리 하나 정도는 주실 법한데,
두 분이서 서로 먹으라면 꽁냥꽁냥하시다가 두 분이서 하나씩 드시드만요.
"너는 나중에 니 각시한테 챙겨달라고 해." 하시면서.ㅎㅎㅎ

저는 항상 두 분처럼 사는 것이 목표였죠.
할아버지처럼 할머니를 아끼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는 삶...
명절이면 집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돌아다니면 항상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회장님댁 손자라고...
(진짜 기업 회장님은 아니고 이런저런 협회 회장을 오래 하셨어요.ㅋ)

중1 때였나.. 당시 평화민주당 신기하 의원이 광주 동구 선거 운동 중에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할아버지께 절하시는 모습을 보고
오~ 울 할아버지 대단한데...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할아버지께서도 할머니 앞에서는...ㅋㅋㅋ

저희 할머니는 철저하게 원칙주의자 였습니다.
할머니의 성격은 아래 이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엄마들을 학교에 불러서 무슨 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물론 저는 할머니께서 가셨겠죠?^^
그런데 10시에 시작하기로 했던 행사를 10분이나 늦게 시작한겁니다.
울 할머니 대노하셔서 교장, 교감 다 불러놓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런 약속시간 조차 안지키면 학생들이 뭘 배우겠나?"
하시면서 호통을 치셨습니다. 하아... 덕분에 저는 학교에서 유명인사가...ㅠㅠ

일제시대, 감옥에 갖혀 계실 때 밤마다 감방 동료분들의 머리를 땋아주셨다는데요.
순사들이 데리고 나가서 포대자루에 담아 강물에 던져버렸을 때,
머리가 풀어져 엉키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며 매일 머리를 땋고 땋아주셨다고 합니다.
다 죽겠구나 하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빠져나올까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기개가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나가서 할아버지랑 만나실 생각이셨답니다.ㅎㅎ

해방 후 초기 여권운동에 앞장 서시기도 하셨고,
'광주 민주화의 어미니'라 불리시는 조아라 여사님과 고스톱 친구셨던 저희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세상 순한 양이 셨습니다.

고1 겨울 방학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행사 등에서 연설하셨던 녹음 테잎을 항상 틀어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침대 머리 맡에는
"오늘 밤에는 꼭 나를 데려가주세요"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화장실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95년에 제가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할머니께서도 서울에 사시는 큰아버지 댁으로 옳기셨는데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딱 10년이 되는 해에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뭐... 다른 사람들은 믿지 못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 두 분의 사랑이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할머니께서 쓰러지시고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
제가 광주 망월동 국립 묘지에 전화를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망월도 국립 묘지에 계시고 그 옆자리가 할머니 자리라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문의 했다가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죠.

할머니께서 큰아버지 댁으로 옳기면서 주소지가 서울이 됐는데,
광주에서 거주 하신지 30일 이상은 돼야한다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 그렇게 말하더라구요.ㅠㅠ)
해서 급히 할머니 주소를 광주에 있는 친적 집으로 옳겨 놓고
할머니께서 망월동으로 못 가실 때는 대비해서 망월동에 계신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병원으로 부터 전화를 받고 뛰어가보니 아침 7시 23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 제가 할머니 주소지를 광주로 옮긴지 딱 31일 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망월동에 있는 할아버지 곁으로 무사히 가셨고,
그 앞에는 조아라 여사님이 그리고 그 옆에는 고아원을 하시던 원장선생님을 마지막으로
생전 고도리 맴버들이 다 모이게 됐지요.ㅎㅎㅎㅎ

저희 부부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살았으면 하고 노력 중입니다.
다만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할머니께서 얼마나 힘들어 하셨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저는 제 아내 곁에 최대한 오래 있을 생각입니다.
그 좋아하던 담배도 끊은지 올해로 14년째
술도 회식 때 한 두잔만하고 가끔 집에서 아내랑 맥주 한 두 캔 하는 수준입니다.ㅎㅎㅎ

아... 운... 동...은... 작년 부터 시작했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내의 "난 당신이랑 오래 살고 싶어."에 넘어가서 일주일에 세 번씩 진짜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ㅋ
근데 얼마저 요로 결석을 폭삭 늙은 느낌이..ㅠㅠ

그래도 오래 살도록 노력할겁니다.
여러분도 오래 오래 함께 하세요~~^^

할머니 기일이 다가오니... 괜히 울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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