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네가 죽는 꿈을 꿨어." 그는 술잔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안에 조금 담긴 술이 찰랑거렸다. 나는 그저 웃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사뭇 다른 진지함이 담겨있었다. "뭐라고 할까." "막 네 영정 앞에서 불키고 절하고." "나 니네 가족 다 알잖아. 친척까지도 알잖아." "다들 눈물 흘리고 그러시는데." "난 눈물도 안나오더라. 그냥 위로하는 말 밖엔 못했어." "아무튼 그랬어." 그는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별 꿈을 다 꿨네, 하며 다시 웃어보았지만 그는 평소처럼 웃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너 발인하는 거 까지 봤다?" "참, 커다란 녀석이 재는 아주 적더라." "근데 그래도 눈물이 나오진 않더라." "눈물이 나오진 않았어." 그제서야 그는 웃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조금 안도하며 웃었다. "우리 그저께 했던 말 기억나냐. 내가 그랬잖아. 니가 죽고나서 100년쯤 더 지나고 죽을 거라고." "난 이제 125살에 죽는건가봐. 하하하" 나는 그의 팔뚝을 주먹으로 치면서 술을 따랐다. 그는 그 술잔을 보면서 다시금 웃음을 멈췄다. "그 꿈에서, 혼자 우리 동네로 돌아왔는데." "딱 컴퓨터 키고 게임 들어갔는데 말이지." "너가 접속이 안되있는거야." "게임 폐인 자식이 웬일이래. 했는데" "그러고 보니 넌 죽었더라." "우리들 자주갔던 피씨방 기억나? 그 초등학교때부터 하던 곳." "거기 가도 아무도 없더라." "짜증난다고 막 키보드 치다가 아저씨한테 오지게 혼났잖아." "근데 아무도 없더라고." "막 우리 돈 없어서 맨날 노래부르려고 갔던 옆마을 코인 노래방에서도." "맨날 돈 없다고 500원만 꿔서 노래부르고 했잖아." "거기도 가봤거든." "왠일인지 딱 500원 있더라." "그 우리가 자주 부르던 그 힙합 노래 알지?" "그거 부르다가 내 파트가 끝났을 때 딱 멈췄는데." "아무도 노래는 안부르고 mr만 그냥 흘러나오고." "아, 너는 없지. 하고 또 그랬어." "그냥 그래서 거기 마트에서 맥주 사서 그냥 털레털레 걸어갔지." "쫄병스낵 그거에 필스너 들고." "그래서 공원에 가서 전화기를 눌렀거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딱 한 명." "근데 안 받더라고." "그러고보니 죽었더라고." 그는 계속 술을 들이켰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린다고 안 마실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그렇더라." "없더라고." "그래서 하튼 그건 필요 없을것 같어." "125살까지 안 살아도 되니까." "그냥 그렇게 막 혼자서 떠나지 마라." "그냥 너는 그렇게 게임이나 하고, 맥주나 마시고." "그냥 그렇게 있어라." "그렇게 있어라." 그는 푹 하고 엎어졌다. 역시 과음했나. 술잔을 대충 내려놓은채. 그는 혼자서 계속, 없더라고. 라며 중얼거렸다. 그는 눈을 감은채 그렇게 있었다. 나는 내 술잔에 조금 남은 술을 마저 따라 그대로 쭉 들이켰다. 빈 잔은 슬쩍 테이블에 내려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거죠?" 탁,하고 모든 것이 멈췄다. 점멸하던 백열전구도, 바쁘게 움직이던 주인장의 손도.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도. 그의 볼을 따라 흐르던 무언가도. "그건 너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잖아?" 한 여자가 모든 것이 멈춘 포차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슬쩍 웃으며 근처의 테이블에 기대 앉았다. "저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녀는 어깨를 슬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모든 것은 한 여름밤의 꿈이었던 거지." "네가 없는 세상이 현실이고, 네가 있는 지금이 꿈일 뿐이야." "마지막 소망은 이뤘나?" 나는 그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참 익숙하다. 멍청한 표정, 멍청한 후드티. 참 변함 없다. "그냥 마지막으로 한 잔 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요." "정말, 몰랐네요." "하지만 너는 이미 돌이킬 수 없지." "너가 뛰어내리기 전에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너가 없어도 세상은 굴러가지만." "어떤 사람은 너가 없으면 세상이 멈추는 법이야." 딱, 이렇게 말이야. 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 말대로다. 무기력해서,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아서.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정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얘는 125살까지 살까요." "아니, 대답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잊어주세요." 그녀는 살짝 짧은 한숨을 쉬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술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술은 전혀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단지 아쉬움을 남긴 한 잔이었다. 참 멍청한 녀석이다. 너도 나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포차 문을 열더니 무언가 생각난듯 멈춰섰다. "그러고보니 이건 어떻게 할까?" 그녀가 포차 문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원래 내 마음대로 하는거지만, 저 친구를 봐서 한번 양보해주지." 나는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엎어져있는 그를 보았다. 그의 눈가는 촉촉했다. 안 울었다면서, 거짓말 치고 있네. 여전히 멍청한 모습. 익숙한 모습. 마지막 술잔. 텅빈 술잔.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잊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