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비상구
게시물ID : panic_956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15
조회수 : 23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29 00:21:56
옵션
  • 창작글
16908789_1450646688281594_493918056469233664_n.jpg


"비상구는 희망의 표시야."


종훈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 비상구의 사람을 가리키며.


"저건.. 그런거야.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뭐?"

"그 막 먼저 지원군을 부르러 나가는 발빠른 병사."

"아하."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다급한 모습으로 전장에서 뛰쳐나오는 발빠른 병사.

전우들을 위해 구원군을 이끌고 돌아오는 병사.


탁, 하고 앨범을 덮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종훈이의 작은 얼굴에 검은 어둠이 드리웠다.

나는 잠깐 방을 나갔다.

아들이 어디 나가세요? 라고 물어봤지만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단지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 처럼.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한 대 꺼냈다.

칙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서 불이 올라왔다.

이내 불은 쉽사리 꺼졌다.

하지만 담배는 붉게 불타올랐다.

옅게 퍼지는 기시감이 조금 기분 나빴지만

그래도 구태여 나는 담배를 피웠다.

무언가를 굳이 떠올리듯

무언가를 굳이 잊지 않게.


몇 번인가 연기가 피어올랐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초록색 비상구 유도등이었다.

희망의 표시라는 그 비상구.

그때도, 저것만은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종훈이는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붉은 불길과

숨막히는 뜨거운 공기에

등줄기에 흐르는 차가운 땀.

그리고 초록색 비상구였다.


발빠른 병사.

희망의 상징.

나는 홀로 내달렸다.

종훈이를 업고 끌고 왔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구원군을 이끄는 발빠른 병사는 다친 병사를 이끌고 가지 않는다.

단지 홀로 내달려 다같이 귀환해서 멋지게 구하는 것이다.


나는 내달렸다.

하지만 다음 수순은 없었다.

큰 소리에 뒤를 돌아봤을 때

이미 늦어버렸으니까.


불은 의외로 쉽사리 꺼져버렸다.

다만 그 잔해속에 있는 무언가.

나는 그 끊임없이 타오르던 그 검붉은 것을 잊지 못한다.

초록색 비상구를 향해

어쩌면 나를 향해.

팔을 뻗고 있었던 검붉은 재를.


끼익,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이었다.

아들은 쫄래쫄래 내 쪽을 향해 뛰어왔다.

폭 하니 작은 몸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다만 검붉게 타오르는 꽁초를 바닥에 던져 발로 밟을 뿐이었다.


"뭐 하세요?"


아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웃었다.


"그냥. 바깥 공기 좀 쐬려고."

"그럼 재밌어요?"

"아니, 재미있지는 않아."


하지만 아들은 뭐가 좋은 건지 환하게 웃었다.

내려갈까. 하고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들은 앗, 하고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초록색 비상구 유도등이었다.


"저거!"

"..."

"저거 비상구라고 하는거죠?"

"그렇단다."


아들과 잡은 손이 조금 떨렸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담배꽁초는 아직도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건 무슨 의미에요?"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멈춰서서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말이 나왔다.


"저건. 희망의 표시야."

"희망의 표시?"

"응. 희망의 표시."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짧게 아, 소리를 냈다.


"지원군을 부르러 나가는 발빠른 병사?"


나는 그 문장을 잘 알고 있다.

평생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의외로, 나는 경악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그럼 왜 희망이에요?"

"저 사람 표시 앞에 손이 안보이잖니?"

"사실 저 손은 다른 사람이 잡고 있어."

"저 사람은 말이지."

"가장 먼저 뛰어나가는 겁쟁이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기다려준 희망이야."


이걸로 된걸까.

나는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들은 고개를 까딱까딱 위아래로 흔들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럼, 이걸로 된거겠지.


나는 다시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들이 신이 났는지 먼저 뛰어내려가는 것에 이끌려갔다.


살짝 고개를 돌려 옥상을 쳐다보았다.

회색 담뱃재가 시나브로 흩날리고 있었다.

출처 다들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저는 조만간 또 시험에 MT에 공모전에...

바빠 죽겠지만 ㅠㅠ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