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부는 건강상의 문제로 딩크로 살게 되었고 지금은 남편의 신념(?)으로 아예 섹스리스가 되었네요.
남편은 현재 치료법이 따로 없는 희귀병이어서 명상과 단전호흡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그걸 가르쳐준 스님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오래 안아프고 살고 싶다면 남자들은 정을 보존해야한다." -> 섹스를 자제하란 얘기입니다. (정확히는 '사정'이겠네요.)
규칙적인 건강한 성생활이 건강에 좋다는 상식과는 반대되는 개념이죠.
섹스리스의 정의가 어느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마지막으로 한지1년이 넘은것 같아요.
아프기 전까진 임신을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산부인과도 다녀보고 보약도 먹어보고 체온으로 배란일도 체크해보고... 콘돔은 신혼때에도 써본적도 없어요. 그래도 의무적(?)으로라도 섹스를 했었죠.
그러다가 이제 애갖기를 아예 포기한 이후로는 섹스를 하는게 재미도 없고 할 필요성이 없어졌달까요.
10년쯤 같이 사니까 정말 그냥 가족같아요.
원래도 남편은 그쪽으론 좀 수줍어하고 담백한 성향이어서 지금 이렇게 섹스리스로 지내는게 훨씬 평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도 크게 불만은 없어요.
남편이 피곤해하니까 먼저 요구해본적이 없었고 가끔은 남편 등을 보고 잠드는게 외롭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저 또한 일하느라 피곤해서 그냥 안하면 안하나보다 하고 편하게 살았네요.
결혼 전에는 저 스스로가 성욕이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속궁합이 잘 맞는 남친과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즐기는 편이었는데 막상 결혼할때는 지금 남편이 가장 이상적인 남자로 보였죠.
너무 밝히는 남자는 왠지 언젠가 바람을 피울거 같았거든요.
내 몸도 이제는 40대.... 더이상 젊지도 않고 섹스를 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생각해보면 섹스라는게 자식을 낳기 위한 목적이 크고 그저 유희의 한 종류라 한다면 그거 아니어도 현대에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니까요.
그러면서도 가끔 의문이 듭니다.
남편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걸까?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친구처럼만 지내도 충분히 행복한 것인지..?
(저는 남자가 아니라서 전혀 속마음이 짐작도 되지 않네요.)
이 얘기를 진지하게 남편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남편은 자기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라 한낱 섹스가 중요치 않을거에요.
그냥 나 스스로가 무성욕자가 되는 편이 답이죠.
실제로 그렇게 지낸거 같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복직해서 하게된 일이 에로틱한 게임을 개발중인데 자료를 찾다보니 그동안 잠잠해 있던 성욕을 깨우게 만들더군요. 야동을 처음 보던 때처럼 흥분도 되고 재미있었어요. (집에 혼자 있을때 살짝 자기위로를 하기도 했죠.)
근데 정말 나이를 먹긴 했나봐요. 그런 기분이 오래 가진 않더라구요.
며칠만에 금새 시들해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현자타임'이란게 오더라구요.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딩크부부들은 성생활에 문제가 없을까?
섹스리스를 문제라고 봐야하나,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라고 봐야하나?
문제를 삼는 자체가 문제인가?
남자한테는 자존심의 영역일수 있고 여자한테는 몸과 마음이 모두 사랑으로 충족되는게 섹스라고 알고 있었기에....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삶의 모습과는 점점 달라지는 내인생이 당혹스럽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흥미롭기도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저의 현 상황에서 고민 아닌 고민이 되버린것 같네요.
이런 글을 쓰는게 남편을 비난하거나 제 신세한탄을 하려던 의도는 아니구요.
남편......세상에서 부모형제보다 더 친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