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인 이시형 씨가 2015년 다스 협력업체를 직접 설립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내에서 이 씨가 임원으로 등기된 회사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 씨가 세운 회사와 같은 주소지를 쓰는 중소업체가 출처불명의 자금 1485억 원을 다스에 입금한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최근 다스 실소유 의혹이 재점화된 가운데 이 씨를 둘러싼 수상한 자금 흐름이 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2015년 4월 경북 경주 천북면에 ‘에스엠’이란 회사를 세웠다.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에스엠은 자본금 1억 원의 자동차부품 업체로 이 씨와 김진 전 다스 총괄부사장이 사내이사로 등기돼 있다. 김 전 부사장은 이 씨 외삼촌이자 이 전 대통령 매제로 다스 실소유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김 전 부사장은 에스엠 지분 25%(5000주)를, 나머지 75%(1만 5000주)는 이 씨가 갖고 있다.
다스 협력업체인 에스엠은 지난 2년간 각각 42억 원과 58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90% 이상은 다스에서 발생했는데 다스가 대기업에서 일감을 받으면 에스엠이 다시 하청을 받아 납품하는 구조다. 국내 재벌들도 이 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키워 경영권을 승계한 경우가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 이 씨는 다스 지분이 없다.
설립 당시 자산 규모가 9억 5000만 원에 불과하던 에스엠은 바로 다음해인 2016년 자산 규모 400억 원의 또 다른 다스 협력업체 다온(옛 혜암)을 인수한다. 지난 2년간 매출이 586억~686억 원인 다온은 다스로부터 50%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자본금 1억 원짜리 법인이 자산 규모만 40배에 달하는 회사를 삼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실제 2015년 12월 기준 에스엠의 현금 자산은 4600만 원에 불과했고, 2016년에는 자산 11억 원(현금성 자산 8200만 원), 부채 11억 2000만 원의 자본잠식에 빠졌다. 즉 에스엠은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지 않는 한 다온을 인수할 수 없었던 셈이다.
에스엠과 법인등기 주소지가 같은 세광공업(현재 법인명은 한양실업)은 김진 전 부사장이 대표를 지낸 자동차부품 업체다. 김 전 부사장은 이 회사 지분 35%를 가진 최대주주다. 1997년부터 이 전 대통령 실소유 논란이 인 세광공업은 2001년 7월 주주총회에서 해산을 결의했다. 그러나 2010년 7월 부동산 임대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슬그머니 영업을 재개했다. 에스엠 사업장이 위치한 경주 천북면 일대 토지와 건물은 모두 세광공업 소유다.
세광공업에서 공장 시설을 빌려 쓰는 또 다른 법인은 다스 하청업체인 에스비글로벌로지스다. 에스비글로벌로지스는 다스로부터 제품 포장과 관련한 일감을 몰아 받고, 2014~2015년 267억~271억 원의 매출과 32억~35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13년에도 다스로부터 147억 원어치 일감을 받았다. 공장이 설립된 시점은 2010년 10월, 세광공업이 영업을 재개한 시점에서 불과 3개월 후다.
에스비글로벌로지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90%를 가진 이동형 다스 부사장이다. 이 부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의 장남으로 최근 다스 해외법인 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나 다스 실소유 논란을 한번 더 불지폈다.
공교롭게도 이 부사장은 매년 200억 원대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는 에스비글로벌로지스에서 등기임원을 포함한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았다. 이 회사의 대표는 지분 10%를 가진 정 아무개 씨다. 정 씨는 이 부사장이 지분 49%를 가진 또 다른 다스 하청업체 아이엠의 지분 15%도 들고 있는데, 이 부사장이 2009년 아이엠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반면 정 씨는 2012년부터 계속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에스비글로벌로지스와 아이엠의 실소유자가 이 부사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아이엠의 대표는 송 아무개 씨로 과거 다스 핵심 협력업체인 J 사의 부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또 에스비글로벌로지스는 지난해 다스와 거래를 끊고, 무려 1485억 원을 다스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다스는 에스비글로벌로지스로부터 2016년 1485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보유 채권과 채무의 합이 2억 6000만 원에 그쳐 남은 돈은 전액 현금 형태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다. 에스비글로벌로지스가 다스의 납품회사임에도 거꾸로 다스가 에스비글로벌로지스로부터 매출을 올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실제로 다스는 2013~2015년 에스비글로벌로지스에서 불과 5400만~6300만 원의 매출을 올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한 해 만에, 그것도 거래를 끊은 납품업체로부터 148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2014~2016년 에스비글로벌로지스의 자산은 73억~86억 원에 불과해 1485억 원을 지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 공인회계사는 “에스비글로벌로지스가 다스에 1400억 원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데다 다른 다스 협력사 매입과 달리 그 회사 매입만 갑자기 늘었다”며 “허위 매출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비글로벌로지스 임원은 “우리는 유령 회사가 아니라 다스에 납품하는 정상적인 회사고, 송 씨는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것”이라며 “에스엠과 같은 사업장에 있는 것은 맞지만 나머지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표 정 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에스비글로벌로지스는 전체 자산 가운데 부동산 등 유형자산 비율이 5~10%에 불과하고, 나머지 자산은 모두 현금 형태로 보유한 특이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제든 폐업할 수 있게 자산 처분이 용이한 것이다. 앞의 회계사는 “재무제표상 다스와 에스비글로벌로지스의 거래가 2016년 끊겼는데 그해에도 에스비글로벌로지스가 23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매출 출처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