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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커덕, 소리와 함께 그가 의자에 앉았다.
침대에 앉아있던 초췌한 노인이 그제서야 그를 보고 인사했다.
“아, 송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는 노인을 보고 웃었다.
차트를 휘리릭 넘기며 글자 하나하나를 읽다가
쓱 볼펜으로 무언가를 그었다.
“안녕하세요.”
“그냥, 앉아계시길래 한번 찾아 뵌겁니다.”
“뭐하고 있으셨나요?”
“창밖에 핀 벚꽃이라도 보고 있으셨나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노인이 가리킨 것은 아주 흐릿한 그믐달이었다.
구름에 가려 삭월인가 싶은 그러한 달이었다.
“달이라는 것 말입니다.”
“옛날엔 자주 달놀이를 했었죠.”
“둥근 달을 보며, 저무는 달을 보며 그렇게 술 한 잔 하곤 했습니다.”
“술 한잔에 달 한모금, 그렇게 말이죠.”
“언젠가 아들과 하고 싶었습니다.”
노인은 달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는 노인의 눈동자 안에 잠든 그믐달을 쳐다보았다.
“아들은 참 똑똑하고 귀여운 아이였어요.”
“일하러 나가면 창문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들고.”
“통닭 한마리 사오면 그게 참 세상의 전부래도 얻은 듯 행복해 하는.”
“백점짜리 받아쓰기를 흔들며 헤헤 웃고.”
“친구랑 돌팔매질 하다 눈 위를 찢겨와서 엉엉 울다가도 제 얼굴을 보니 또 헤헤 웃는.”
“정말 참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나이가 차자 나가버렸어요.”
“술 한잔 하기도 전에 정말 바람처럼 말이죠.”
“몰래 숨긴 대학교 학사경고 통지표 때문이었을까요.”
“휴지통 속의 연애 편지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면 어느새 사라진 얇은 지갑속의 오천원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때문인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무엇때문인지에 앞서.”
“그것은 제 탓이었겠죠.”
결국은 말이죠, 라며 노인은 후후 웃었다.
저무는 달과 같은 웃음이었다.
“어쨌든 아들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참 그리울 때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마치, 달과 같은 겁니다.”
“점점 차오르다 어느새 저물고 마는 것이죠.”
“어느 아이들이나 부모에겐 그런 법일 겁니다.”
“언젠가는 저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게 제 아이는 빨리 저물고 만 것이겠죠.”
“술 한잔 걸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다 저물고 난 달에 술을 걸치는 것은 고독할 뿐이니까요.”
“그저 그랬을 뿐입니다.”
“단지 그래서..”
노인은 말 끝을 흐렸다.
단지 창 밖의 그믐달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그런 노인의 말을 들으며 차트에 무언가를 적고만 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잘 들어가세요.”
“언제나 몸조심 하시구요.”
그와 노인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그가 나가기 직전에 바라본 노인은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저물어가는 그믐달이
이윽고 삭월이 될 그 달이 무엇이라도 된 듯.
그는 차트를 보았다.
차트에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새하얀 종이에는 그의 닿지 않을 말들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송 선생님’ 이라 불리는 그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다만 아무것도 아닌 그는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싶었다.
독한 술을, 정말 독한 술을.
보름달 같은 잔에 정말로 독한 술을 가득 마시고 싶었다.
그래야 그 눈 위의 작은 상처가 아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야 저물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금
출처 | 요새는 단편이 정말 단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옛날엔 그래도 6000자는 넘었던 것 같은데 저 또한 저무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