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페이지의 5학년 담임선생님의 충고를 6월항쟁과 연결해서 해석해 볼까요.
"짐작은 간다. 모든 게 맘에 차진 않겠지. 선진국과는 많이 다를 거야.
특히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돼먹고-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 여기의 방식이다. 대통령은 다만 심부름꾼일 그런 나라도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아니, 선진국 국민들 같이 모두가 똑똑하면 오히려 국가는 그렇게 운영되는 게 마땅하겠지.
그러나 거기서 좋았다고 그게 어디든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방식이 있고 너는 먼저 거기 적응할 필요가 있어.
선진국에서의 방식이 무조건 옳고 이곳은 무조건 틀리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해.
봤지? 오늘 국민들 중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전두환을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내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처럼 만들고 싶었다면 먼저 국민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설령 네가 옳더라도 나는 국민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전두환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쨌든 국민들을 그렇게 만든 전두환의 힘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잘돼 나가던 대한민국을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흩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
거기다가 어쨌거나 전두환은 가장 똑똑하고 통솔력 있는 모범적인 대통령이다.
무턱대고 비뚤어진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그의 장점도-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시작해 보아라.
전두환과 경쟁하고 싶다면 정당하게 경쟁해라. 알겠니..."
저는 여기에 이 소설의 주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은 이곳의 방식이 있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꾼다면 '한국식 민주주의'가 될 겁니다.
그리고 5학년 담임선생님은 이 반에 독재가 필요한 이유가 반 아이들이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5학년 담임선생님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한병태는 여전히 '어리석고 비겁한 다수에 의해 짓밟힌 내 진실'이라며 실패의 책임을 반 아이들에게 돌리고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 아이들을 혐오하기 시작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비판의 대상 역시 엄석대에서 반 아이들로 바뀝니다.
그래서 후반부에서는 6학년 담임선생님과 엄석대가 갈등을 일으키는 동안에 한병태는 반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기존의 해석에서 가장 저평가된 것이 이 5학년 담임선생님일 겁니다.
여기서 그가 한병태에게 충고하는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의외로 반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엄석대가 반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고 있는지, 한병태가 어떻게 개혁을 진행해 왔는지, 아이들이 왜 엄석대의 편에 섰는지.
그리고 묵인을 통해 엄석대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서 반을 전교 일등으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합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과 비교해 본다면 손 안 대고 코 풀 줄 아는, 노련한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