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판에 수록된 '또 다른 결말'에서는 엄석대가 성공한 모습으로 한병태 앞에 다시 등장합니다.
엄석대가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기존의 결말은 여러 면에서 어색합니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어색함이 아니라 그냥 모호합니다.
30년 후에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거라면 엄석대는 왜 반에서 도망쳐야 했는지, 그리고 과거의 초인적인 능력들은 다 어디로 가고 무능하게 변했는지...
그에 비해 '또 다른 결말'에서는 모든 것이 충실히 설명됩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른 결말' 쪽이 소설의 결말로서 더욱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병태 아버지의 평가도 유효하고, 한병태의 무효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무엇보다 '열한 시에는 일어서지'라고 말하고는 시간이 되자 칼같이 일어서는 엄석대의 모습은 '유리창 사건' 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럼 왜 작가는 기존의 결말로 끝을 맺어야 했을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만약 '또 다른 결말'로 끝을 맺었더라면, '6월항쟁'이 끝나고 4개월 후에 출간된 이 소설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지금처럼 독재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잠시 한병태도 살펴 보죠. '자율과 합리'라는 단어는 한병태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번 회에서 그 단어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정신적인 능력과 학문에 대한 천착의 깊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고 자율과 합리에 의해 지배되는 곳'
저 말을 좀 쉽게 바꿔보면 '대학의 서열에 따라 행복과 풍요의 서열이 결정되는 것' 쯤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한병태가 생각하는 '자율과 합리'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30년 전에 한병태가 엄석대에게 도전한 것도 설명이 됩니다.
처음 전학 온 날, 반 아이들은 한병태를 무시하고 시골 아이인 엄석대에게 복종합니다.
심지어 엄석대는 자기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는 한병태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일입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온 엘리트인 자신이 반을 지배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반을 합리적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즉, 자신이 급장이 되는 것과 반이 '자율과 합리'를 되찾는 것은 한병태에게는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병태의 질문에 아버지가 '네가 급장이 되어 봐'라고 답했던 거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병태는 엄석대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엘리트임을 발견합니다.
때문에 저항할 명분은 사라지고 엄석대에게 항복하게 되지요.
그러자 엄석대는 한병태를 반의 넘버2로 끌어올려 주는데, 이렇게 반은 한병태의 입장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한병태도 행복해지죠.
마찬가지로 새로운 급장을 뽑을 때 한병태는 무효표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급장이 되든 그가 자신과 엄석대를 지배한다는 것은 '불합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대가 된 한병태는 '따라지' 대학을 졸업한 동창들이 자기보다 더 잘 사는, 새로운 '불합리'와 마주하게 되고, 자기 대신에 불합리한 사회를 바로잡아 줄 존재로 엄석대의 부활을 염원합니다.
또한 궁지에 몰린 한병태는 '한마디로 말해 나도 어서 빨리 그들의 풍성한 식탁 모퉁이에 끼어들고 싶었다'며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전학 첫 날에 반 아이들이 엄석대에게 땅콩과 계란 등을 바치는 걸 보며 한병태가 분노한 것은 과연 민주주의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엄석대의 '풍성한 식탁'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112페이지에서 한병태의 아내도 매우 재미있는 대사를 합니다.
"왜 엄석대란 친구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보니 대단한 분 같은데......"
그러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는 듯한 뉘앙스입니다.
호텔 지배인과 룸살롱 사장의 태도를 종합해 보면 엄석대는 거물급 조폭으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남편이 조폭과 절친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아내의 첫 대사로는 좀 이상합니다.
보통 '그 사람 좀 위험해 보이던데...'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전에 이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권력에 굶주려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심지어 이 아내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제가 지난 7년간 국제학교에서 문학교사로 일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의 문학 교육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소설이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소설 속에서 'A는 선이다'라는 언급이 나오면 A를 선이라고 간주하고 그의 행동과 대사를 해석합니다.
그래서 기족의 해석에서는 '6학년 담임선생님은 민주주의를 가르친 영웅'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독자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작가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과연 6학년 담임선생님은 선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를 평가해 봤습니다.
그러자 '6학년 담임선생님은 악일 수도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러자 새로운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한병태를 통해 6학년 담임을 선이라고 정의해야 했을까?'
저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작품과 6월항쟁을 연결시켜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수박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핥은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저의 부족한 해석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해석이 한국문학이 낳은 걸작들 중 하나인 이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