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실패와 남·북·미 정상회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고려시대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실패’를 조선역사 1천년래 제1대 사건으로 규정했다.
묘청의 서경천도 실패를 기점으로 민족의 진취적 기상은 쇠퇴하고, 유교사상에 물든 사대주의가 득세했다는 것이 단재의 시각이다.
‘조선사연구초’ 한 구절을 보면 이렇다. “묘청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했으므로 조선역사가 사대·보수·속박적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묘청이 승리했다면 조선사가 독립적·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사건을 어찌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 하지 않으랴.”
단재는 자주성을 상실하고 사대의 길을 걷게 된 민족의 운명을 탄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원인을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냄으로서 이를 후세에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