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이 활약하던 시기는 서태후가 살아있던 청말이다.
당시에도 청은 열강들의 총칼 아래 신음하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현상 유지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08년 서태후가 죽었다.
1911년 청제국도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청제국을 무너뜨린 위안스카이는 정권을 잡고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만
쑨원을 비롯한 국민당 세력과 민중들의 저항으로 곧 물러나 실의에 빠져 죽는다.
이제 중국 대륙에 주인은 없었다.
쑨원 사후 국민당은 남부 광동 일부에나 지배권을 갖고 있을 뿐 나머지는 전부 군벌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제 내전이 벌어진다.
쑨원의 후계자 장개석은 북벌을 시작해 군벌과 동맹하거나 토벌해 중국 통일을 완수하나 싶었지만
위기감을 느낀 장개석 파 군벌들이 배신해 반장전쟁이 벌어지며 중국은 전국이 전쟁터가 되었다.
겨우 반장전쟁을 제압하고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1931년 대륙을 탐내던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며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 만주국을 세운다.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베이징 상하이 난징 우한 창사 등 주요 도시를 모조리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난징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
요리왕 비룡은 계속 되는 전쟁을 피해 요리를 계속했다.
언젠가 평화가 올거라고 믿고 자신의 요리를 후대에 전해줘야 한다는 사명으로..
1945년 드디어 전쟁이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에 주둔한 일본군은 장개석에게 항복하며 평화가 오는듯 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젠 장개석과 모택동의 내전. 국공내전이 벌어진다.
1949년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만으로 피신했지만 비룡은 피신하지 않았다.
이미 늙어 피난도 어려웠지만 공산당이라고 해서 요리를 천시하진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66년. 비룡은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요리도 거의 정리했고 이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해 문화대혁명이 터진다
요리사는 부르주아 자본가 지주에 봉사하는 인민의 적이 되었다
만두와 국수 외의 요리는 부르주아가 탐닉하는 요리가 되었다.
수백년 전통을 가진 요릿집도 부숴지고 만두와 국수를 팔라고 강요당한다.
비룡은 거리로 끌려나와 평생 정리한 자료가 불에 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또한 조리돌림을 당하며 온갖 모욕과 조롱을 당했다.
만한전석의 레시피도 사라져버렸다.
일부는 남았지만 내는 순서가 사라져버렸다.
전통요리는 끝장났다.
비룡은 평생의 회한을 갖고 슬픔속에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