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가 잠 못드는 이유 (1)
정말 미치겠다. 날짜는 다가오고, 아니 다가왔고. 언제냐구? 바로 내일. 내일이 무슨 날인지 궁금하겠지. 아니 왜 미치겠는지 그게 더 궁금하겠지. 궁금해도 일단은 좀 참으라고. 지금 다 얘기하면 재미없거든.
글의 기본 알지? 복선을 깔아가며 은근 슬쩍 독자들을 끌고가는거. 여기서 다 까발리면 재미없어지지. 아 나 너무 무식한 표현을 썼다. 까발리다니, 이게 무슨 소리. 까발리는게 아니고 다 밝히면.
그래도 좀 알려달라고? 에휴 내가 마음 약한건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그래 솔직히 말하지 뭐. 어짜피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볼거니까. 자 잘 들어보라구.
내일은 L양의 결혼식이야. 근데 왜 미치냐고? 그건 바로 미래의 자기 배우자때문이야. 그 남자가 다 좋은데 이상한 버릇이 하나있거든. 밥을 먹을 때, 꼭 자기가 한번 먹고 나면, 녀가 한 번 먹고, 그렇게 반복해야하는거야.
이유인 즉슨, 그만큼 사랑한다네. 그만큼 L양을 사랑한다는 거야. 왜 그런거 있잖아. 너무 사랑해서, 외출도 금지, 드라마시청도 금지, 톡도 금지. 전화도 금지. 때론 폭력을 쓰기도 하고, 너무 사랑해서그랬다 하잖아.
아주 심하면, 영화에서나 만날 법한 그런 일도 벌어지지. 너무 사랑해서 그거까지도 감행하는거야. 그게 뭐냐고? 그건 알아서 이해해. 여기서 쓰기는 좀 그래.
너무 사랑해서, 자기 녀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사는게 싫어서, 다시 말해, 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거까지도 감행하는, 한마디로 사랑해서 그렇다. 완전 사이코패스
지금은 그렇게 세상이 미쳐가고 있어. 자고나면 들리는 흉흉한 소식들. 이거 진짜 맞아? 나 지금 꿈꾸는거 아님? 하는 그러한 진짜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어떤 댓글에는 그런 표현도 있더군,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인생은 미스터리의 연속. 아니 인간은 미스터리의 연속. 우리는 지금 그 세계에 살고 있어. 어떤이는 그 미스터리땜에 자살하기도 하고, 타살하기고 하고,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또 어떤 이는 고아가, 또 어떤 이는 길거리에 나 앉기도, 자신이 낳은 자녀들에게 버림받은 채, 물론 그들은 버렸다고 안하지. 그냥 모셔다 드린거고, 그분이 돌아오지 못한거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 속에서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남친이 왜 그러지? 여친이 왜 그러지? 시모가 왜 그러지? 며느리가 왜그러지? 우리 아이가 왜 그러지? 미친 7살? 중2병? 쌤이 왜 그러지? 모두가 미스터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지.
어제 뉴스에서 3월 개학을 앞두고 명퇴신청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데. 이유인 즉슨 아이들때문이지. 바로 아이들이 왜 그러지?..에 해당되는 말이야. 어떤 50대 교사는 제비뽑기에서 담임이 되었는데, 바로 다음날 명퇴신청. 들리는 말에는 담임하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데.
자! L양은 드디어 결심했어. 내일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이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어. 아니 그 이상기류가 더 커질까 걱정인거야. 거기서 끝이면 맞추며 살 수 있을거 같은데, 지긋지긋한 노처녀 딱지 떼어 줄 남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더군다가 L양이 뭐 남들한테 인기있는 전문직도 아니고, 결혼하고, 곧 은근슬쩍 그만둬야하는 좀 그런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여기까지왔지. 또 그게 너무 사랑해서 그런다니, 좀 은근 기분이 좋기도 했고. 서론이 길어지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구.
모든 문제의 시작은, 바로 첫 단추야! 으음 그 단추 말고, 진짜 단추. 옷에 붙어있는 단추. L양이 전철에서 윗 옷의 단추 하나가 떨어진거야. 찾으려고 바닥을 마구 뒤졌지. 근데 그게 보이겠어. 그 작은 하나가. 우리 집에서도 보면, 그런 경우 거의 못 찾잖아.
그렇게 당황하며 찾고 있는데, 바로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자기 양 발 밑의 정 중앙에 있는 단추를 주워서 주는거야. 와우 왠일이니, L양을 쳐다보는 그 눈빛에 그만,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 치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며, 나름 최선을 다해, 미소를 지었는데, 남은 전혀 반응이 없고 그냥 앉아있는거야. 와우 미치겠다 정말. 가슴이여 멈추어라. 지금은 때가 아니야. 네 맘대로 그렇게 휘저을거면 나는 너를 사랑이 아닌, 미친 이기심이라 부르리.
사랑은 늘 그렇게 짖굳게 그 모습을 드러내 많은 남녀들은 혼란 속에 빠뜨리지. 요정이 사랑의 묘약을 그 붉은 입술에 바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의연한 모습으로 관망하는거야. 마치 그 혼란을 즐기려는 듯.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한바탕 연기를 하는거지. 그렇게 해서 L양의 가슴앓이가 시작된거야.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애절하고, 조금은 안타깝고. 너무 갑작스러운거 아니냐고?
사랑이 뭐 언제 예고하고 찾아와? 사랑은 어느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아니 어떤 친구에게는 태풍과도 같이 오지. 일시에 그 마음을 사로잡아, 저 망망대해, 한 복판에 내동댕이 쳐지는거지.
그 마음이 비에 젖는줄도 모르고, 우산은 이미 놓아버린채, 걷고 또 걷는거야. 바보같이 뭐가 그렇게 슬퍼서 울고 또 우는지,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 밤을 지새우는지. 용기를 내 친구들아. 와우 나 왜 이러니. 어디서 훈계질. 요즘 친구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
자, 그렇게 멍 때리고 있는 사이, 전철이 서고, 남이 내리기 시작하네. 녀가 따라 내렸냐고? 당근 따라내렸지. 아직 5부 능선도 안 건넜어. 갈길이 멀다고. 부지런지 따라가야지. 아니 따라가고 있는데, 와우 이게 무슨 일, 또닥또닥 이어지는 녀 자신의 구둣발소리에, 녀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어.
어? 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설마 남을 쫓아가는거야. 아 안돼 안돼 이건 아니야. 미쳤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제발. 그렇게 다그치며 또 다그치기를 몇 차례, 그러나 그게 또 맘처럼 안돼잖아.
왠지 운명같고, 왠지 놓치면 안될 것만 같고, 그래서 계속 따라가는데...남이 갑자기 뒤돌아 보는 거야. 아이고 깜짝이야. 심장아 멈추어라. 이성의 목소리가 방망이질치네. 빨리 수습하라고. 이유를 찾아내라고.
“저기요. 무슨 일 있습니까?”
“네? 무슨 일이라니요?”
“지금, 계속 쫓아오시는거 같아서요”
“아 아니예요. 저...저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예요”
조금은 어이없어하고 조금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정말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었지. 이게 무슨 망신이람. 내가 정말 미쳤지 미쳤어.
그렇게 다그치는데, 남이 왠일인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있네, 뭐야 왜 안가는 거야. 어쩌라고, 아 정말 미친다 미쳐. 그냥 걸어야지 뭐. 가던 길 가야지.
그렇게 가다보니, 녀가 앞서가게 된거야. 남은 그냥 있는거 같은데, 뭐 뒤돌아볼 수도 없고, 그냥 느낌이 그래.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가다보니 끝이 없어. 날씨도 춥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고.
아 이제 어떻하지? 뒤돌아 볼 수도 없고. 남이 갔나 확인해 볼 수도 없고, 아휴 모르겠다. 그냥 일단 아무 집이나 들어가는척 하며, 은근슬쩍 빠지자. 그렇게 생각하며, 멈추었지,
가로등 밑, 유난히 밝은 파란대문 앞. 바로 운명이 시작되는 그 곳. 가방에서 머리핀 하나를 꺼내서 열쇠인척 하며, 열쇠구멍이 넣고 여는척했어. 진땀이 흐르고 정말 미치겠는거지. 그렇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데, 왠지 찝찝한거야. 뭔가가 이상해 뭔가가. 아니나 다를까.
“저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뒤돌아보며).. 네? 뭐..뭐하다니요?”
“거기 우리집인데, 뭐하시냐고요!”
“네? 여..여기가 니..님의 집으라고요?”
아 운명아, 너는 어찌하여 늘 그렇게 내 편이 아니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게도 행운이란걸 좀 나누어 주렴. 조금은 용기내서 살 수 있게. 늘 그렇게 나한테 야박한 것은 무슨 이유가 있는 거니.
늘 그렇게 위태롭게 걷다가, 뒤 늦게 방망이질 치는 님을 만났는데, 꼭 이렇게 끝을 보아야 하니. 운명아 말을 해주렴. 내가 조금이라도 살아갈 수 있게, 그 끈을 내려다오.
아주 가느다란 하나라도 좋아. 그 힘을 다해 곧 끊어져버릴지라도. 지금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악마의 제안이라고 거절하지 않으련만. 악마도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하구나.
나는 지금 늪 속에 빠져들고 있어. 아무도 없는 칡흑같은 어둠 속. 누가 있을까. 누가 있어 나의 손을 잡아줄까. 늘 그랬듯이 나의 외침은 빈 항아리에서 그저 뱀돌뿐, 그 끝은 침묵이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