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언제로 모실까요?
두 사람이 엇갈려 다니면 간신히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골목길이다. 게다가 골목길 양쪽에는 모텔, 여관이라고 써 놓은 입간판들이 줄지어 있어서 뜀박질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철재는 그 골목길을 거의 뛰는 듯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뒤돌아 보고 싶지만 혹여나 누군가 쫒아올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돌리고 싶지도 않았다.
길은 좁은 골목에서 6차선 도로로 이어졌다.
큰 도로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소음도, 빛의 간섭도 커졌다.
‘골목길에서 나가면 오른쪽에는 편의점이 있었어. 사람들이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지도 몰라.’
철재는 골목길에서 나오자 왼편으로 방향을 휙 틀었다.
‘집으로 바로 가는 것은 바보짓이야. 집중하자. 집중’
아무리 자신을 다그쳐도 쉽사리 당장 가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돈은 얼마 있지? 당분간 피해있으려면 얼마가 필요한 거지?’
당분간이라니, 도대체 당분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주일? 한달? 1년?
‘욱’
옆구리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 엄습했다. 철재의 무릎이 툭 꺾였다.
‘으윽’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잊고 있었던 통증이 대로변에 나서자 마자 그를 덮친 것이었다.
두 손으로 겉옷을 살짝 제치고 옆구리를 본다. 꿀럭 꿀럭 피가 스며나온다.
‘하아. 하아. 병원부터 가야 하나?’
철재는 한 번도 칼에 찔린 상처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병원은 곧 자신이 잡힌다는 것과 다름 아닌 것도 잘 알았다.
‘병원은 아니다. 그렇다고 집도 아니다’
그 때 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뜀박질 소리. ‘탁, 탁, 타다탁’
‘한 명이 아니다. 벌써 잡으러 오는 거다. 일단 숨어야 한다’
철재는 다시 움직이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서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우욱’
간신히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숙인채 몸을 일으킨 철재.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다시 전기처럼 옆구리를 강타하는 통증에 차로 변에 털썩 주저앉는다.
고개를 돌려 보면 건장한 사내들과 제복입은 경찰이 뛰어 오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 이제 끝인가? 여기까지인가’
사람들의 모습도, 늦음 밤 서울을 환하게 비추는 네온사인의 불빛도 희미해진다.
이 때 철재에게 들리는 환청같은 목소리..
“손님? 안 타실 거예요?”
택시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며 철재를 보며 세상 친절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아버지뻘 되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모습이 철재의 눈동자에 박힌다.
“타. 탑니다.”
철재가 간신히 택시에 올라타고 택시가 출발한다. 그리곤 사라진 철재를 두고 허탈하게 서 있는 건장한 사내들과 경찰의 모습이 택시 후미경에 비친다.
“손님 언제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고개를 돌려 철재를 보곤 묻는다.
‘네? 엇 잘못 들었나? 아니 잘못 봤나?’
조금 전의 택시 기사는 50대가 넘어보이던 그런 아저씨였다. 그런데 지금은 20대 중반의 훈남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택시 기사를 보는 철재.
“언제로 모실까요 하고 여쭤봤는데요”
대답대신 차문을 열고 나가려는 철재. 무서움에 떨고 있다.
“손님 운행중에 문은 자동 잠금 됩니다. 안전을 위해서요. 언제로 떨어질지 누구도 알 수가 없거든요”
여전히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택시 기사. 이번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듯한 미소년이다.
옆구리에 난 깊은 상처로 죽음을 앞두고 환영을 본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철재. 포기 상태다.
“그냥 아무.....”
“손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요. 옆구리는.... 아마 괜찮아졌을거예요”
택시 기사의 말에 철재는 상처를 만져보지만, 뜨듯한 피의 감촉도,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깊숙한 칼의 자욱도 없다. 철재 놀란 눈으로 택시 기사를 본다.
“공간과 시간은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우린 그걸 시공간이라고 하죠. 저희 택시는 원하는 곳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모셔다 드리고 있습니다. 언제로 모실까요?”
“그럼 택시 요금은?”
“당연히 멀리 가시면 요금이 많이 나오죠. 가까운데는 기본 요금. 다블이나 할증은 없어요. 메타대로 요금이 나옵니다. 바가지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하하하. 단지 현금이나 카드는 안됩니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데 돈은 의미가 없거든요. 시간 택시에는 시간으로만 지불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라면”
“남은 여생에서 지급하시면 됩니다.”
택시 기사가 철재에게 아이패드 미니 모양의 기계에 손을 대보라고 한다. 철재가 손바닥을 펴 기계에 손을 대는 순간, 숫자가 나타나 이리 저리 움직이곤 마침내 ‘636’ 이라고 알려준다.
“육백삼십육개월 남으셨네요. 손님의 여생 말입니다. 그럼 53년 더 사실 수 있다는 얘기에요.”
“제가 앞으로 53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택시 기사가 철재에게 코팅된 용지 하나를 건네준다.
“요금표입니다”
기사가 준 요금표에는 ‘기본요금 6개월, 1시간-1개월, 한달-6개월, 1년-2년, 5년 부터는 1:1로 적용됩니다’ 적혀 있다. ‘과거로의 요금이며 미래는 적용되지 않습니다’라고 당구장 표시도 되어 있다.
“두 시간이요”
철재는 두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흥분하지만 않는다면, 아니, 그 년놈이 미안하다고 사과만 했으면, 다른 건 다 바라지 않는다. 사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무엇보다 사과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아니. 아예 처음부터 못 볼꼴을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네 두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택시 기사가 미터기를 조작하자 말이 뒤로 달리기 시작하더니 택시 미터기의 숫자가 12에서 반짝 반짝 거린다. 숫자가 12에서 13으로 바뀌는 순간.
택시 기사가 말한다.
“도착했습니다.”
“네.”
“아. 그리고 손님. 저희 택시를 다시 부르고 싶으시면 카톡에서 시간택시 검색하셔서. 친구 등록하시면 됩니다.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는 철재. 해가 지기전 어스름 저녁의 서울 하늘이다. 아까 온 길을 뒤돌아 가는 철재. 편의점앞에서 라면을 먹는 고등학생들이 보였다.
“학생”
“네?”
라면을 먹던 고등학생이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몇시지?”
“5시 50분이요. 여섯시 다되가는데요”
두 시간 전으로 왔다.
“응 고마워 학생”
좁은 모텔 촌 골목길에 들어서는 철재의 눈에 낮익은 사람이 보인다.
어딘가 긴장된 모습. 그리고 무언가에 매우 화가 난 듯해 보였다. 두툼한 겨울 점퍼 사이로 가슴 한쪽에 손을 집어 넣고는 스카이 모텔이라고 써인 입간판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그 사람. 철재 자신이다.
철재는 모텔 앞에 사람
이 자신이라고 느끼는 순간, 휘이익 하고 귓가에 바람소리같은 것이 들렸다. 그리곤 빨려들 듯 사내의 몸으로 연기처럼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