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
글 : 루류루
#1
여느 때와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일을 하러 갔다. 돈이 필요 했다. 친구들은 여행을 혹은 자기계발을 하는 시간에 나는 일을 하러 갔다.
어깨와 양쪽 다리에는 파스가 하나씩 붙여져 있다. 일이 고된 탓이었다. 마침 겨울인지라 파스를 붙인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시렸다. 빨리 오늘 하루가 끝나기를, 빨리 이번 방학이 끝나기를 바라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함께 일하는 이모들과 인사를 나누며 웃었다. 겉으로라도 웃으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보자며 다짐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였다.
“설아.”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2년 전 담임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탓에 순간, 반가움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선생님! 식사하러 오신 거예요?”
“응. 설이가 여기서 알바를 하는구나.”
꽤나 좋아했던 선생님이다. 국어선생님답게 다정한 눈빛과 목소리를 가진 분이셨다. 이런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다.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과 짧은 시간에 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마침 식당이 한가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선생님은 내 대학생활을 궁금해 하셨다. 학점이라던가, 기숙사 생활이라던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남자친구는 생겼고?”
아직 생기지 않았다는 말에,
“이런 보석을 왜 안 데려가지?”
누군가에겐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겠지만, 선생님과 내 사이는 그만큼 가까웠다. 이런 내 모습이 싫어 찾아가지 않았던 거지, 각별했다. 난 오히려 내 청춘을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 기뻤다.
#2
“설아, 또 올게.”
잠시였지만 선생님과의 대화로 제법 들뜬 나였다. 콧노래도 나오고 ‘그래. 까짓 거 열심히 일해서 돈도 더 많이 벌지 뭐.’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대화를 곱씹을수록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늪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대학생활 재밌게 하고.’
‘네. 저, 진짜 열심히 살고 있어요!’
‘응. 그래 보여.’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에 선생님은 왜 그렇게 보인다고 하셨을까. 우리 집 형편을 아는 선생님이 내가 알바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드신 걸까? 아님 남들 다 놀 때 난 일을 하니까? 분명 선생님의 음정에는 대견함만이 담겨 있던 게 아니었다. 그 다정한 사람은 내게 동정, 연민을 숨기지 못했다. 나에 대해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항상 그렇다. 대놓고 동정하거나, 동정심을 숨기려 시선을 피하거나. 나를 꿰뚫어 보는듯한 그 시선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모두 역겹다. 이 역겨움은 지겹다.
내가 만약 건물이라면, 난 지상은 1층이고, 지하로는 10층까지 있는 균형이 맞지 않는 폐건물일 거다. 누구도 왜 지었는지 모르고, 누구도 찾지 않는. 나는 오늘도 내 존재를 숨긴다. 내 감정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머물러 있는지를 숨긴다. 어차피 밖에서 보면 지상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먹고 간 음식들을 치운다. 김칫국물은 손톱 사이사이 스며들고 당면은 날 죽이려는 낙지처럼 달라붙어 기분이 더럽다. 안 그래도 겨울이면 다 터서 새빨개지는 손이 김칫국물을 닦다보니 군데군데 피가 고여 있다. 길쭉하고 부드러워서 예쁘단 말을 자주 듣던 손에 잔주름이 생기고 굳은살이 도사린다.
“하..”
한숨을 쉴 때면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 시리다. 시린 건 오늘 붙인 파스 탓일까.. 눈물이 고인다. 시린 건 내 몸뚱이일까,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