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자국
글 : 루류루
#1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설. 그녀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녀가 슬퍼하면 나도 슬프다. 하지만 한 가지, 그녀가 아파하면 나는 기쁘다. 그녀가 우울해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리의 게임은 시작된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 단 둘만의 놀이.
“아파.”
기쁘다. 즐겁다. 설이가 아파하는데 왜 즐겁지? 오늘도 난 그녀의 손목을 든다. 그러곤, 커터칼을 들고, 삭.
“아파..으..”
그녀의 우울함이 내게 숨어있던 공격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걸까. 더 우울해하게 만들고 싶다. 더 아파하게 만들고 싶다. 더 혼란스러워하고, 더 울고, 더, 더 망가뜨리고 싶다. 가끔씩은, 죽여 버리고 싶다.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란 건 죽음으로부터 이루어질 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죽어야 영원해지니까.
삭
얇은 줄 하나.
삭
그 위에 얇은 줄 또 하나.
삭
그 위에 깊은 줄 하나.
삭
그 위에 더 깊은 줄 하나.
흐르는 핏물, 고이는 핏물, 그녀의 눈물.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나와 그녀뿐이었다.
#2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녀의 상처에 입맞춤을 했다. 비릿한 맛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 칼을 놓쳐 버렸다. 상관없다. 이제 설이의 팔을 소독할 차례다. 설이가 죽으면 내 삶도 끝나니까.
“죽여줘, 제발. 제발 죽여줘. 이럴 바엔 죽는 게 낫겠어.”
설이가 울면서 외친다. 왜 죽여 달라는 걸까. 설이가 조금은 아플지라도, 난 설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이고 싶어도 꾹 참는 건데. 왜 이런 내 마음을 몰라줄까.
“아니야. 살려줘. 제발 살려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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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피를 모두 닦고 손을 씻다가 거울을 보았다. 그곳엔, 설이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