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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일기
게시물ID : panic_1002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문화류씨
추천 : 43
조회수 : 5171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9/06/07 05: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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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일기


1

 

 그날따라 하교 길을 평소에 가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 개구멍을 지나, 방앗간 담을 넘었다. 마을골목 안 후미진 곳에 당도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윤선아, 윤선아...”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는다며, 집을 나간 형석이 오빠였다. 2년 만에 돌아온 그를 보니 반가웠다. 웃으며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도 나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왠지 기운이 빠져 있었다. 퀭한 눈에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볼이 움푹 패여 있었다.

 

 오빠는 자신의 담장 앞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예전처럼 놀아 줄 것 같아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오빠가 거부했다.

 

 “윤선아, 들어오면 안 돼! 그런데 말이여, 오빠가 부탁이 하나 있어. 너네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좀 보내 줄래? 내가 왔다고 하면, 곧장 오실 거여.”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 동네 오빠가 마을로 왔다는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하고 싶었다. 서둘러 집에 도착해서 장작을 패고 있던 아버지에게 말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박스에서 라면 두 봉지를 챙겨 나갔다. 나도 아버지 뒤를 쫓아갔다. 좀 전까지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진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아버지가 먼저 오빠네 집에 들어갔다. 연이어 내가 들어가려는 순간, 아버지가 퉁명하게 말했다.

 

 “윤선아, 들어오지 마러!”

 

 그 의미를 몰랐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발을 드리려고 했다.

 

 “내 말을 못 들었어? 들어오지 말라고!”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당장 가서 마을이장과 순경들을 불러서 형석이 오빠 집에 오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아버지가 원채 화를 내었기에, 시키는 대로 했다.

 

 이상하게 불안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럴까?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온 동네 아저씨들이 소리를 지르고, 형석이네 오빠 집으로 달려갔다. 밖에서 큰일이 났다는 소리만 났다.

 

2

 

 아버지와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를 불렀다. 꽤 심각한 분위기에 어깨가 위축되고, 땀이 났다.

 

 “윤선아, 거짓말 하면 큰일 난다... 너 말이여, 정말 형석이 본 거 맞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른들은 미칠 노릇이었나 보다. 한숨을 쉬고, 머리를 세게 긁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왜 그런지 몰랐다. 그리고 연이어 물었다.

 

 “그러니까 형석이가 지네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고?”

 

 짜증이 났다. 왜 계속 같은 걸 묻느냐며 따졌다. 하지만 아버지와 경찰들은 다시 한숨만 쉬었다. 차마 어린 나에게 말을 못 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윤선아... 듣고 놀라지 말어...? 형석이가... .. 죽었어...”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 집에 상이 났다고 하면, 나와 상관이 없는 하나의 행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죽은 지 한 달이 넘은 놈이 너한테 말을 거냐? 윤선아, 어른들 놀리는 것 아녀. 형석이가 귀신도 아니고, 너한테...”

 아버지가 경찰의 입을 막았다. 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 경찰들이 떠나고, 엄마에게 물었다. 형석이 오빠가 왜 죽었으며, 앞으로 볼 수 없는지도 말이다. 엄마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제야 죽음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형석이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동네 꼬마들의 짓궂은 장난도 다 받아주고, 손재주가 좋아서 썰매며, 칼이며 뭐든지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늘 가난이 탈이었는데, 그 나마 마을 사람들이 도와줘서 여든이 넘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사망한 이후, 그는 난데없이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겠다며 집을 비운 것이다.

 

 다음 날, 동네아이들과 개구리라도 구워 먹으려고 모였다. 범식이란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한윤선, 너 정말 형석이 형을 본 것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범식이의 동공이 커졌다. 아이들은 나를 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거... 형석이형 귀신이 아닐까?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말이여, 형석이 형 죽은 지 한 달이 넘었데. 경찰이랑 보건소 의사선생이 와서 확인한 거 아니여? 무엇보다 유... 유서 적힌 날짜가 저번 달이라는 거여.”

 

 경자는 온 몸을 떨어댔다.

 

 “그런데 말이여... 너네 그거 알어? 사람이 죽으면 썩고 냄새가 나잖아? 근데 형석이오빠 시체는 하나도 안 썩었데... 울 할머니가 그러는데 말이여, 원한이 깊어서 그런 거래...”

 

3

 

 좁은 마을에 형석오빠가 적은 유서내용이 퍼졌다.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오빠는 외갓집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엄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궁금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에 서울까지 먼 길을 찾아갔다.

 

 엄마는 매우 잘 살고 있었다.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사랑을 다른 아들에게 쏟고 있었다. 몇날며칠을 지켜보며, 분했단다. 형석오빠는 아는 척 할 마음은 없었지만, 너무 분해서 벨을 눌렀다.

 

 처음에는 자신을 못 알아봤지만, 설명을 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단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엄마의 침착한 모습에 당황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부터 어렵게 살아왔던 지난날들,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까지 말해버렸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단지 쓴웃음을 지으며, ‘고생 많았구나정도였다. 자신에 대한 미안함에 통곡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대할 줄 몰랐다. 이에 엄마가 말했다.

 

 “그게 다니?”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형석이 오빠는 단지 미안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되지 않으니, 복잡한 심정이었을 테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가 오빠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 이거 받아. 그리고 이제 찾아오지 마.”

 

 어른이 되었을 무렵, 그것이 얼마나 치욕적인 기분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형석오빠의 심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경황이 없어서 돈을 받고 내려왔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몇날며칠을 울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비참했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이후 오빠의 시신은 경자 말대로 썩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말이다. 진짜 한을 품으면 시체가 썩지 않는 것일까?

 

4

 

 아버지와 이장이 형석오빠의 외갓집을 찾았다. 오빠의 부고를 알렸다. 또한 오빠의 엄마에게도 알렸으면 한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외할머니가 통곡을 쏟아냈단다.

 

 “어이구... 박복한 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형석오빠 엄마의 또 다른 아들이 죽어버렸단다. 멀쩡하던 아이가 병원에서 손도 쓸 수 없게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다.

 

 가끔 아버지가 그날의 일을 말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뒷담이 서늘해진다고 한다. 마치 형석오빠가 데려간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정말 형석오빠가 씨 다른 동생을 데려간 것일까?

 

 오빠의 외할머니가 딸에게 알렸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흉가가 되어버린 형석오빠 집에서 꽤 오랫동안 여자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통곡을 하다가, 다시 웃다가... 때론 괴이한 소리를 냈다. 동네 어른들이 형석오빠의 엄마가 돌아온 것이라 했다.

 

 마을 사람들이 잠들 수 없을 정도로 요상한 소리가 들리자, 오빠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누군가가 들어왔던 흔적 하나 없었다. 집 안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한 동안 여자의 곡성이 계속해서 들렸지만,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죽은 지 한참이 지난 오빠가 나를 불렀을 때를 말이다.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은 그것이 귀신이라며 무섭지 않으냐며 소란스러웠지만, 전혀... 오십이 훨씬 넘은 지금, 아직도 그날이 공포로 느껴진 적이 없다. 단지 그립고, 보고 싶지만 돌아 갈 수 없음에 막막할 뿐이다.


비극일기 完



PS : 그 동안 써왔던 <문화류씨공포괴담집>은 <오늘의 유머>에서 잠깐 쉴까 합니다.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입니다. 하지만!

       7월 중순 부터는 <문화류씨>가 과거에 당선되었던 공모전 수상작을 다시 구성하여 보여드릴까 합니다.

       오로지 <오늘의 유머>에서만 만나 뵐 수 있습니다.

       당연히 장르는 공포이며, 조선괴담이나 요괴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독자께서 보기 편하시게 장편이지만, 단편처럼 구성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덕분에 매일이 영광스런 나날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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