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본 조각 : 윤회
글 : 루류루
#1
길을 걷고 있었다. 여긴 어딜까. 낭떠러지 같은 곳이다. 난 그 위에서 무얼 하고 있던 걸까. 경치를 둘러보고 있었을까, 사람을 찾고 있었을까. 난 그저 두리번거렸고, 그곳은 절벽 끝이었다. 어느새 발은 미끄러졌고, 바로 밑에 있던 호수로 나는 떨어졌다. 하지만 그 호수는, 호수라기 보단 뭔가 인위적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절벽을 만들고 호수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마치 누가 빠지길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호수에 빠질 때, 호수 끝에서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과학자 혹은 센터에서 일하는 연구원 같았다. 한 손에 차트를 들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나를 그저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나는 정말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는데 말이다.
물에 빠지는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도 모르게 물속에서 숨을 들이켜 버렸다. 물이 코에 들어가 기침을 했고, 기침 덕에 숨을 쉬는 건 더욱 힘겨웠다. 이게 죽는 건가 싶어 무서웠다. 사람이 정말 무서우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던데, 딱 그 처지였다. 심지어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순간, 순간,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소리였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당황스러움과 무서움의 연속이다. 나는 그 호수에서 첨벙거리며 살려 달라 외쳤다. 수면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외치는데, 이상한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내가 잠에 들 때 얼굴 위로 덮었던 이불이 그대로 보이는 거다. 맞아, 난 분명 자고 있었는데. 내가자고 있었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계속 이불만 보였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 뇌가 멀쩡한 식물인간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안간힘을 써서 눈을 뜨려고,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아까 그 과학자가 나타났다.
“너는 너무 죄를 많이 지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호수에 빠졌을 때 그렇게 비명 소리가 들렸구나.
“그래서 네 기억을 지운거야.”
내게 말을 건네는 과학자와 눈을 맞췄다. 뭘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무엇일까. 증오였다. 분노. 그 역시 나에게 원한이 있어서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눈물을 머금고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그 눈물 끝에 다정함이 있기에 애써 참는 것일까. 이게 애증이란 것일까.
#2
“설아.”
“응?”
장면이 바뀐다. 이곳은 다시 기숙사. 내 앞에는 친구들이 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부 잊었다. 난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아, 전화 온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
“오빠 저도 같이 나가요.”
“나도!”
방 안에는 놀러온 친구 셋과 내가 좋아하던 오빠가 있었다. 친구 둘은 서로 죽고 못 사는 닭살 커플이었고, 보다 못한 나와 내 친구는 오빠를 따라 나왔다. 난 친구와 이야기하며 오빠 눈치를 봤다. 오빠도 전화를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좋았다. 오빠도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걸까.
#3
첨벙
다시 한 번 장면이 바뀐다. 여긴 어딜까.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장소인데. 데자뷰인가? 난 지금 호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끝에는 차트를 들고 있는 과학자가 서 있었다.
“아.”
기억났다. 그였다. 아직도 난 같은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구나. 다행히 이번에는 호수가 얕았다. 물을 가르며 호수를 빠져나갔다. 그에게 다가갔다.
“좀 걸을까?”
그는 처음엔 앞서 걸었지만, 곧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밉지 않아요?”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네가 기억을 잃었는데, 어떻게 미워해.”
다행이기도하고 미안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낭떠러지 끝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꿈에서 깼다.
#4
무슨 꿈이었을까. 마지막에 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던 사람은 나였을까. 아니, 그 전에 자신이 내 기억을 지웠으면서 기억을 잃었으니 날 미워할 수 없다니.
“하아...”
친구들이랑 오빠는 왜 보여준 거지. 아, 나는 왜 그 사람이 보여준 거라고 생각하지? 꿈은 원래 이리저리 바뀌는 거잖아. 혹시,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을까? 그는 누구였을까. 오늘 죽을 운명인 나를 살려준 것일까? 전생의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참, 몽롱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