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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천지가 울리는듯한 굉음과 진동에 모두의 눈동자는 소리난 쪽을 향했다. 눈치 빠른 몇몇은 이미 소리를 질러댔고, 영문을 모르는 몇은 옆 친구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이냐며 물어댔다.
체육선생은 반장에게 아이들을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하고 서둘러 사고현장으로 뛰어갔다. 그 누구도 운동장을 벗어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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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의 엄마는 무당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수현이 한창 예민하던 중학교 시절 신내림을 받았다. 수현은 하루아침에 '평범한' 엄마를 잃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삶도 잃었다. 그녀의 엄마는 하루에 세번,두시간씩 공들여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20평 남짓한 집의 거실에는 정성스러우면서 기괴한 신당이 차려졌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향내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수현은 예전처럼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수도, 엄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받아볼 수도 없었다. 수현의 십여년의 삶이 단 몇달만에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과거의 수현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것 처럼.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중학교때부터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그것이었다. 그녀가 힘들때나 기쁠때나 수현의 엄마보다도 더 힘이 되준 그였다.
어느날 집에 돌아온 수현은 그녀의 남자친구가 준 러브레터를 들고 선 채로 맹렬히 그녀를 쏘아보는 엄마를 마주했다.그녀의 엄마는 소리쳤다.
"야 이 육××년아! 내가 몇번이나 말했냐! 니년은 내팔자 따라가는 운명이라고. 학교든 연애질이든 니년이랑은 연이 없다 했냐 안했냐! 당장 신을 모셔도 시원치 않을 판에 뭔짓거리를 하고 다니는거야. 하도 사정사정해서 학교는 보내 줬더니만 겨우 이런 영양가없는 놈이랑 연애질이나 하고 앉았어? 그놈의 새끼랑 당장 안 헤어지면 내가 그놈의 새끼 다리 몽둥이를 톡하고 분질러 버릴테니까 그리 알어!마지막 경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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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수현. 너 미친거 아니냐? 이 귀한 H.O.T오빠들의 1주년 기념 브로마이드를 주다니!암튼 땡큐야!
"이 하이테크펜 가지고 싶은 사람 있어?"
"나나나 나줘!"
"그럼 이 펜텍샤프는? 가질사람?"
"니 진짜 복권이라도 당첨된거야?아님 설마 너 전학가는거야?"
"그런거 아니야.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나 지금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체육 못할 것 같으니까. 내가 오늘 교실에 남는 당번할게.선생님한테도 잘 말씀드려줘."
"그래그래. 그정도 쯤이야."
"야! 우리 1분남았어. 정각에 운동장에 전원대기 안하고 있음 찬호박한테 맞을지도 몰라!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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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체육시간. 교실에 홀로 남아 운동장 쪽을 물끄러미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던 여고생, 수현은 열려진 교실의 창문사이로 자신의 몸을 가볍게 던졌다.
[엄마. 엄마의 점사에는 딸이 곧 죽게 될거라는 건 안 나왔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