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약공포단편] 그 빌라의 비밀
게시물ID : panic_1004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플라잉제이
추천 : 8
조회수 : 137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7/13 05:43:10
옵션
  • 창작글
#




정호네 빌라는 경사가 30도쯤 기울어진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덕분에 3층이었지만 다른 빌라의 3층 옥상이 쉬이 보일 정도였다. 


혜현동 빌라촌에 살던 그 시절 정호의 취미는 망원경으로 세상 구경하기였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얻어오신 망원경은 정호에게 있어서 그 어떤  장난감보다 흥미로웠다. 정호의 망원경에 포착되는건 늘상 비슷했다. 언덕배기를 쉬엄쉬엄 올라오는 사람들. 맞은편 빌라의 옥상에서 빨래를 거는 아주머니.정호처럼 창문을 열고 바깥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


그날은 유독  거리에 아무도 나와 있지않고 옥상의 빨래 아주머니도 없었다. 그 시간과 공간에 정호만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해서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때 50여 미터정도 아래쪽에 있는 맞은편 빌라 4층에서 연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연회색의 그것은 진회색으로 변했고 곧 시커먼 연기가 그 빌라 주위를 둘러서 감쌌다. 곧 이어지는 섬광과 '펑'하는 소리에 정호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린 정호가 그것이 화재였고 신고를 해야 한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을때는 이미 많은 동네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4층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었다. 


정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망원경을 집어 4층을 주시했다. 창문너머로 한 여인이 보였다. 그 여인은 주민들을 내려다보며 살려달라고 울부 짖었다. 주민들은 두툼한 겨울이불의 각 모서리를 잡고 그 여인에게 뛰어 내리라고 소리쳤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던진다면 큰 상처는 입지 않을것 같다라고 정호는 생각했지만 그녀는 쉽사리 뛰어 내리지 못했다. 정호는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뛰어내릴 용기가 없는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그러던 와중 소방차가 골목에 진입했고, 소방관들은 구조작업과 화재 진압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에어매트가 완성되기 직전, 그녀는 갑자기 4층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 몇몇은 비명을 지르거나 탄식을 했다. 정호도 놀란 나머지 손에서 망원경을 놓치고 말았다. 곧 있으면 안전하게 탈출가능한 그녀였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모두 미동도 하지 않는 여인에게 가 있는 새, 정호는 다시 망원경을 집어들어 4층 창문을 보았다.여자가 서있던 자리에 흰옷을 입은 낯선 남자가 보였다.

' 한명 더 남은건가?  저 아저씨라도 매트로 잘 뛰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관심은 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남자는 정호쪽을 한참 바라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희한하리만치 위로 바싹 당겨진 그의 입은 정호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웃어?...지금...웃은거야?'




순간 검은 연기가 남자가 서 있는 창문을 뒤덮으면서 더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며칠뒤 뉴스에서는 4층 빌라 가족 전원이 사망하였다고 보도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작업으로 인해 빌라 주위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정호의 기억속에도 차츰 그날의 화재사건은 잊혀져 가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정호는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자연스레 여기저기로 향하던 망원경이 그 빌라의 앞에 멈춰졌을때 정호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투신한 여인의 자리에 서있던, 의미를 알수없는 웃음을 짓던 그 남자가  빌라 입구앞에 서 있다가 안으로 스르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곧 4층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지난 화재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로 인해 보수작업을 하던 5명의 인부 모두가 사망했다. 두번의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 때문이었을까. 빌라 주민들은 터가 안좋은 집이라 욕하며 모두 여기 저기로 이사를 갔고, 활발히 진행되던 보수작업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





호우주위보가 발령난 날이었다. 세살 터울 형은 학원수업이 끝나고 늦은 밤에 집으로 전화를 했다. 우산이 없으니 골목 앞까지라도 데리러 오라는 것이 요지였다. 정호는 투덜대며 형을 마중나갔다.




언덕배기를 천천히 올라오던 정호는 그 빌라를 지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4층의 창문을 쳐다보았다. 



정호와 눈이 마주친 그것은 탁탁 소리를 내면서 빠른속도로 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이 묻은 하얀옷의 그 남자였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