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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텀블러(2/2) 完
게시물ID : panic_1006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월향_fullmoon
추천 : 9
조회수 : 8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07 17: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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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텀블러
 
글 : 월향
 
나랑 거래를 하자.”
“...”
, 저 쓰레기를 죽이고 싶은 거 아니야? 낄낄낄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고.”
 
 
박 과장을 죽인다고? 내가? 무슨 수로?
 
 
네가 죽였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장담하지. 그러니까 어서 뚜껑을 열어 보라고.”
 
 
아무도 내가 범인인 걸 모른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아니, 애초에 텀블러 바닥을 통해 귀신을 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어떻게 죽인다는 거죠?”
낄낄낄. 드디어 열었구만 그래. 원래 이 텀블러에 담겨 있던 얼음. 그걸 사용하는 거야. 이 얼음을 그 자식에게 먹여. 커피에 얼음을 띄워 녹여 먹이든 깨물어 먹이든. 한 알이면 충분해.”
단순히 먹이기만 하면 죽는다고요? 박 과장이 순순히 얼음을 먹을까요?”
너도 참 바보 같구나. 네가 가져온 얼음은 보통의 얼음이잖아. 그걸 먹으면 죽는다는 걸 아는 건 너와 나뿐이라고. 그걸 먹이면 밤10시 이후에, 너를 제외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몸에서 또 다른 얼음이 나올 거야. 그럼 넌 그걸 내게 주기만 하면 돼. 얼음에 담긴 그 사람의 영혼을 내가 먹는 거니까. 지옥의 여름도 폭염이라, 영혼얼음이 필요하단 말이지. 너도 그 사람이 평생 벌 받길 바라잖아? 내가 있는 이 곳은 지옥이야. 그 인간을 죽어서도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낄낄낄
하지만, 실패하면요? 만약에 죽지 않으면 어떡하죠?”
걱정도 많은 대리님이구먼,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라고 낄낄낄
저기요, 저기요!”
 
 
맙소사. 사라졌다. 눈 깜빡하는 그 잠시 사이에 귀신의 입이 평범한 얼음으로 바뀌었다. 텀블러를 통해 귀신을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참담한 기분이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일단 얼음을 먹이자. 근데 이걸 어떻게 줘야 박 과장이 자연스럽게 마실까? 먼저 물어보고 커피를 타줄까? 아니야, 안 먹는다고 하면? 그럼 무작정 커피를 타줘? 아침부터 마실까? 아니 그 전에, 그럼 난 살인자인 거잖아. 아무리 더러운 놈이라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남편에, 소중한 아빠일 텐데. 내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울고 싶다 정말.”
 
 
 
 
#3
, 밥들 먹고 합시다.”
 
 
점심시간이다.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분명 점심시간이 끝난 후에, 강 팀장님은 내게 커피심부름을 시키실 게 분명하다. 얼음을 넣을까, 말까.
 
 
김 대리, 밥 안 먹어? 왜 가만히 앉아 있어?”
, 전 속이 안 좋아서, 하던 업무나 마저 하려고요. 죄송해요.”
 
 
도저히 밥이 들어가질 않을 것 같다. 긴장감에 속이 뒤틀리는 것 같다. 장기들이 살려 달라 외치고 있단 말이다. 혹시, 박 과장에게 얼음을 먹이지 않았다고 날 죽이는 건 아니겠지? 그냥 텀블러를 갖다 버릴까? , 어쩌면 얼음이 문제일지도. 앞으로 평생 얼음을 먹지 않고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럼 우리끼리 먹고 와야겠네.”
, 맛있게 드세요, 부장님.”
 
 
철컥
 
 
모두가 나갔다. 혹시 모르니 탕비실로 향하곤, 문을 잠근다. 텀블러를 여는데, 역시나 얼음뿐이다.
 
 
저기, 저기요!”
, 귀신님!”
!”
 
 
여전히, 얼음뿐이다. 제기랄. 제기랄!
 
 
 
 
#4
바깥이 소란스럽다. 모두가 돌아온 것 같다.
 
 
철컥
 
 
아니, 그래서 우리 애가 재롱잔치에서 센터에서 춤을 추지 뭐야.”
어머, 정말요?”
그래, 어찌나 귀엽고 또 잘 추던지. 커서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데, 내 눈에도 재능이 보이더라니까~하하하
 
 
박 과장은 결혼한 유부남에, 일곱 살인 딸이 있다. 유진이. 나도 사진으로 많이 봤다. 유진이에겐 아빠가 필요하겠지. 그래. 나쁜 마음먹지...
 
 
김대리. 보고 싶었어.”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에, 박 과장이 귓속말로 보고 싶었다, 중얼거린다. 그 와중에 손은 가슴을 스친다. 다른 사람들은 애써 눈을 돌린다. , 웃기다. 지금 이 상황. 너무 우습다.
 
 
박 과장님. 커피 타 드릴까요?”
, 좋지.”
다른 분들은요?”
, 그럼 고맙지 김 대리!”
 
 
철컥
 
 
얼음을 넣을까, 말까.
 
 
#5
김 대리, 오늘 야근이구나. 고생해요, 난 먼저 들어가 볼게?”
, 팀장님. 조심히 가시고, 내일 봬요
저희들도 그럼 가볼게요. 김 대리님, 박 과장님 내일 봬요.”
.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나랑 김 대리는 야근 열심히 할게~ 조심히 들어가세요.”
 
 
타다다닥
 
 
사무실엔, 키보드 소리만 울린다. 박 과장은 내가 업무를 마치길 기다리며 자고 있다.
 
 
[-. 10. BO라디오가 10시를 알려드립니다.]
 
 
드르륵
 
 
또각 또각
 
 
박 과장의 자리로 갔다. 그래, 귀신의 말이 맞았다. 박 과장은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는데, 입 앞에 검은색 얼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박 과장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꼴좋다! 하하하하! 이 더러운 새끼! 더러운 새끼!”
 
 
한껏 열을 내니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다. 텀블러를 여니, 귀신의 눈이 보인다.
 
 
낄낄낄. 표정을 보니 성공했구만 그래. 어서 얼음을 보여줘.”
“...”
, 검은색 얼음이구만. 투명한 얼음이 짙어질수록 죄가 많은 것인데, 이 자식의 영혼은 죄로 가득 찼구만. 아주 시원하겠어. , 어서 얼음을 줘.”
 
 
순식간에 귀신의 입이 보인다. 지옥의 냄새가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이는 날카롭고, 혀에는 지진이 난 듯 균열이 나 있다. 박 과장의 영혼을 지옥에, 그것도 지옥에 있는 더러운 귀신의 입속에 보내려니...이렇게 즐거울 수가! 드디어 해방이다! 난 텀블러에 미끄러지듯 얼음을 넣었고, 곧 귀신이 입을 다물었다.
 
 
역시, 아주 시원해. 고마워, 김 대리? 낄낄낄.”
잠시만요!”
 
 
귀신이 사라질 듯 싶어, 얼른 붙잡았다.
 
 
제가 한 짓이란 걸 사람들은 정말 모르나요?”
당연하지. 귀신들은 계약을 할 때만큼은 진지하다고. 영 못 믿겠으면 내일 출근해봐. 그리고 사람들이 너란 걸 알면 다시 나를 부르라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낄낄낄
 
 
#6
안녕하세요.”
어머, 김 대리. 잠깐 이리 와봐.”
? 윤 대리?”
김 대리. 글쎄 박 과장이 어제 야근을 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지 뭐야.”
?”
아니, 어제 우리 다 같이 퇴근해서 박 과장 혼자 야근했잖아. 그래서 새벽에 아무도 몰랐다가 아침에 경비아저씨가 발견했다지 뭐야. 그동안 김 대리 고생 많았어. 그놈은 죽어도 싸. 지옥에 가도 싸다니까?”
 
 
박 과장이 죽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애초에 낙하산이라 하는 업무도 적었고. 여전히 사무실은 돌아갔다. 그리고 난 탕비실로 가, 텀블러를 열었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아무도 내가 한 짓인 줄 몰라요.”
낄낄낄. 그래, 내가 이 정도라니까? 낄낄낄
그래서 그런데 혹시, 얼음 더 필요하지 않아요?”
“...”
몇 개 더 드릴 수 있는데.”
 
 
귀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블라인드 너머로, 몇 명이 더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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