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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게시물ID : panic_1017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나인
추천 : 13
조회수 : 160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0/09/01 04: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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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죄와 벌

 

재판장에 들어선 남자는

쏟아지는 청중의 비난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항구에서 잡부로 일하던 남자는

배에서 무역품들을 하역하던 도중

물건이 든 상자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도

상자가 떨어진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난 상자의 파편이

근처를 지나던 소년의 머리에 박혀

소년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던 중

남자가 근무 중 술을 마신 것이 드러났고

그것은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엄정한 벌을 받을거라 기대했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남자는 고작 2년의 노동형을 선고받았고

성난 사람들은 재판장이 떠나가라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그때

쏟아지는 비난과 멸시 속에서

남자는 자신을 노려보는 한 노파를 보았으니…

죽은 소년의 할머니였습니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소년의 할머니는

일대의 빚쟁이들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었고

그녀의 집요한 일 처리 방식은

지옥 마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이틀 뒤

노동 수용소에 도착한 남자…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남자는 국경에 성벽을 쌓는 일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남자는 무거운 돌을 나르고 쌓았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

하루가 다르게 몸이 여위어 갔지만

이것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나면

남자는 차가운 감옥 벽에 기대

쇠창살 사이로 비추는 창백한 달을 빛 삼아

노파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죄는 쉽게 용서받을 그런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남자가 수용소에 도착하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남자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거친 손길에 잠에서 깼습니다.

같은 수용소의 죄수들이었습니다.

달빛에 번들거리는 죄수들의 흰자에서

남자는 폭력에 대한 갈망을 향해 치닫는 또렷한 광기를 보았고

목덜미에 전해지는 죄수들의 뜨거운 입김은

당장에라도 남자를 먹어치울 기세였습니다.

죄수들은

노파의 사주를 받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죄수들은 남자를 집요하게 찾아왔고

남자가 형량을 마칠 때까지 괴롭힘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나 수용소에서 풀려난 남자…

몸도 정신도 망가져 버린 남자는

너덜한 모습으로 노파의 집으로 향했지만

자신이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가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노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인지

남자 자신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자가 도착한 노파의 집에

노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손때 묻지 않은 식기들과

먼지 쌓인 가구들뿐…

남자의 재판이 끝나고 며칠 뒤

손자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 노파는

처마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를 괴롭힌 죄수들은

노파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수들이 노파의 사주를 받았다고 생각한 남자는

죄수들이 행사하는 무자비한 폭력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라고 믿었고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찬 세월을

용서와 구원을 기다리며 참았던 것이었습니다.

한편

더는 괴롭힐 상대가 사라진 죄수들은

새 장난감을 물색하던 도중

얼마 전 수용소에 입소한 신입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신입을 괴롭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입은 내면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었고

그 모습을 보는 죄수들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jwlee2717/22207680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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