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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글: 월향
#1
삶의 가치는 모두에게 다르다. 그런데 왜 법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가? 아니, 동일하지 않지. 법 또한 누군가에겐 유리하게 작용한다. 왜지? 이해할 수 없다. 난 그저 우연히 이 시대에, 이 나라라는 장소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왜 나는 나보다 먼저 태어난 이들이 정한 순리에 맞춰 세상을 살아야 하지? 내가 원하는 것은 왜 저열하고 비겁한 일이지? 그들과 난 같은 존재가 아니며 난 그들의 법에 동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왜 모든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그 법을 따르고 순응하고, 희생하는 거지? 난 다른 존재들을 위해 희생할 생각 따위 조금도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한 번뿐인 인생, 저지를 대로 저지르자.
#2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들의 수명은 너무 길다. 그래. 딱 20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그리고 난 20년을 넘게 살았기에, 지금부터 20년을 넘게 산 모든 이들은 '나'라는 법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아, 내가 뭐라고 심판을 하냐고? 여기엔 불만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현대에 신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리는 판사들과 내가 다른게 무엇인가? 지식? 그렇다면 그대들이 생각하는 신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인가? 혹은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과 같은 존재인가? 그게 아니라면 판사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 그래서, 그 노력을 한 뒤에 판사라는 자격을 준 것은 결국 인간이 아닌가. 그것도 아니라면 냉정함? 사명감? 그 무엇이 됐든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며 그 누구도 신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똑같다. 나라고 안 될 건 없다.
자, 그럼 첫 번째 법부터 정해볼까? 뭐가 좋을까?
"흠...."
도통 떠오르질 않네. 그래. 내가 심판을 내려줄 것들을 좀 봐야 생각이 날 것 같다. 난 한밤중의 도심으로 향했다.
"어?"
카페로 향하는 길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뭐야, 오늘 운이 좋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심판을 받게 될 졸개 한 마리가 갑자기 사랑스러운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킥킥킥 너 같은 것들은 다 뒤져야 돼. 어디 고양이 주제에 이 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녀?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킥키킥킥"
아아, 정했다. 좋다. 첫 번째 법칙 '악의를 가지고 다른 생명체를 차별하며 괴롭히는 것들에게 벌을준다.'
#3
"야, 너."
다짜고짜 말을 거니 설마 자신에게 말을 걸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 틈에 고양이는 사건 현장을 달아난다. 자세히 보니, 저 쓰레기 때문에 몸에 상처가 난 것 같다. 죽이진 않았지만 아무 잘못 없는 약한 존재를 상처입힌 죄로 몇년이 좋을까?
"음... 사형!"
"너 뭐야?"
"나?"
"그래, 이 새끼야. 니가 뭔데 나서냔 말이야."
"난 너에겐 가해자, 고양이에겐 은인, 독자들에겐... 심판자?"
"뭐?"
"내 첫 심판을 받게 된 것에 영광인줄 알아라."
카페에 도착하기 전에 이런 으슥한 골목에서 마주치다니. 나도 운이 좋다. 고작 한 명에게만 심판을 내려주고 잡혀갈 순 없잖아?
"아아아악!"
예고없이 식칼을 꺼내 허벅지를 찔렀더니 냅다 비명을 질러댄다. 시끄럽다.
"너 같은 것들은 다 뒤져야 돼."
아까 고양이한테 상처가 났던 부분이 어디였더라
"어디 쓰레기 주제에 이 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녀?"
더러운 손을 다시는 못 놀리게 해야지.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
이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그런데 아직 숨을 쉬고 있다. 쓰레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재판에 억울하면, 다시 태어나서 항소하던가."
첫번째 재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