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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성
게시물ID : panic_1023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나인
추천 : 8
조회수 : 173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1/06/14 20: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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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악마의 성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숲에서 길을 잃은 남자는

검게 썩어 뒤틀린 고목 사이를 헤맸습니다.


 

추위와 배고픔과 함께

지독한 두통까지 남자를 집요하게 괴롭혔고

쏟아지는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그때

허공에 거미줄 친 앙상한 가지들 너머 보이는

거칠고 난폭한 산비탈 위로

위협적이고 불길한 모습을 뽐내며 솟아오른

성을 발견한 남자…

 

 

비바람을 헤치고 성의 입구에 도착한 남자는

주변의 음침한 풍경을 압도하는 성의 기괴한 모습에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잡초가 무성한 을씬년스러운 안뜰을 지나

성의 본채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연회장과 거실로 이어지는 긴 회랑을 지났습니다.

 

 

회랑의 벽은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끔찍한 고문이 행해지는 모습과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몸부림치는 희생자들이

장인의 솜씨로 벽 전체에 조각되어 있었고


 

신이시여…


 

그 가공할 만한 사악하고 불온한 상상력에

남자는 몸서리쳤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조각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회랑이 끝나는 지점에 도달할 즈음에는

조각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풍겨오는 축축한 곰팡내와

비릿한 냄새를 맡은 남자는

본능적으로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거실의 왼편 무너진 책장 뒤

지하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보았습니다.


 

통로의 까마득한 심연과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을 본 남자는

충동적인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고


 

그것이

남자를 파멸로 이끌 것이 틀림없건만…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디딘 남자는

나선으로 이어진 계단을 발소리 죽이며 내려갔습니다.

 

 

잠시 후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남자는

떨리는 두 손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회랑의 벽을 장식한 조각은

남자가 지하에서 마주친 것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짓궂은 장난에 불과했습니다.


 

벽에 들러붙은 사람의 살점과 말라붙은 핏자국

입밖으로 끄집어낸 내장과

눈구멍에 쑤셔 넣은 어금니…


 

그건

인간의 소행이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그 어떤 사납고 난폭한 짐승이라도…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정신이 든 남자는

문을 부수고 밀려들어 오는 성난 군중을 보았고

군중 사이에서

쟁기를 든 한 농부가 남자를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저놈이다!

저놈이 그 악마다!


 

그렇습니다.

지하에서 보았던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만행…

모두 남자가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방심한 사이 도망친 희생자를 쫓아 성 밖을 나선 남자는

절벽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고 기억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기억이 돌아온 남자는

성난 군중에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며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그 악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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