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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요일, 오전 11:40분. 일과 시작/
동네에서 한 터프 하는 양재동 모 분식집 사장인 양재동 휘발유(이하 양휘)는, 점심시간을 맞아 걸려 온 주문 전화를 연달아 받고 있었다.
“아~ 명일빌딩, 예. 안녕하세요. 오늘 점심은 어떤 걸로 배달 해 드릴까요? 예? 또 라면하고 김밥 1인분요? 오늘도 한결 같으시네요. 알겠습니다. 10분 내로 바로 배달 갑니다. 오늘도 저번처럼 그렇게 빨리 오냐고요? 그래서 제 별명이 양재동 휘발유 아닙니까. 하하하. 그럼 결재는...”
양휘가 주문 전화를 끊고선, 의자에 앉아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우성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야, 우성아, 그렇게 게임이나 하고 앉아있지 말고 어서 배달 준비해. 뱅뱅사거리 명일빌딩 배달이다. 어휴~ 허구한 날, 라면하고 김밥 1인분만 달랑 시키는 라밥남 땜에 오늘도 진짜 열 받네. 이거 오토바이 왕복 기름 값이나 나올라나 몰라. 그렇다고 배달 주문을 안 받을 수도 없고...”
인상을 마구 쓰던 양휘가 철가방에, 조리되어 나온 라면과 김밥 1인분을 집어넣고 우성에게 건넸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 저번에 갔던 명일빌딩...”
우성이 이제는 지겹다는 듯, 철가방을 잽싸게 낚아챘다.
“그릇은 나중에, 돈은 즉시 받아오는 것, 맞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우성은 철가방을 들고, 양휘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현관문으로 '휙' 나가버렸다.
“야~ 우성아, 위치는 끝까지 듣고 가야지. 저 쪽 뱅뱅 사거리에서...”
양휘는, 오토바이를 타고 멀어지는 우성을 보고는 얼른 우성에게 통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려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우성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켜진 자동차 게임 화면에서는 캐릭터들이 저절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우성은 오토바이 타고 달리다가, 뱅뱅 사거리 입구에서 일단 멈추었다.
“가만 있자. 뱅뱅 사거리 양쪽에, 이름도 똑같은 명일 빌딩들이 있는데... 이젠 어디로 가야하나?”
우성은 본능적으로 안주머니를 뒤지다, 핸드폰을 가게에 두고 온 것을 뒤 늦게 발견했다.
“아차차. 라면 불어터질 까봐 급하게 배달한다고 폰도 두고 나왔네? 에이 씨. 뭐, 늘 시키던 왼쪽 빌딩
라밥남이 맞겠지?”
우성은 뱅뱅 사거리 왼편의 명일 빌딩으로 오토바이를 다시 몰아, 빌딩 앞에 세우고 철가방과 함께 내렸다.
철가방을 들고 빌딩 정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정문을 나와 택시를 잡는 라밥남의 옆 모습이 보였다.
‘어라, 저 새끼. 주문해놓고 갑자기 어디를 가는 거지?, 저, 여기...
아차차, 오늘 주문은 오른쪽 명일빌딩이었구나, 시발~ 큰일 났다!’
우성은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지며, 다리 쪽에 힘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폰 두고 온 날, 하필이면 오른쪽 명일빌딩에서 시킨 거라니? 주문한 라면 다 불어 터질 텐데, x댔다.’
우성은 허겁지겁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오른쪽 명일빌딩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정각 12:00/
우성은 오토바이를 명일 빌딩 정문 앞에 세우고, 안으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헐레벌떡 엘레베이터를 타고 14층 에 위치한 사무실에 왔는데 아직 점심시간이 안 끝난 듯, 실내에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한 남성 직원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책상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이고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저 옆에 이름이 똑같은 빌딩하고 제가 그만 착각을 해서...”
우성은 철가방을 열고 얼른 라면 그릇을 꺼냈는데, 국물은 하나도 없었고 라면 면발은 두 배로 땡땡해져 있었다.
책상 위에 불어터진 라면이랑 김밥 1인분을 조용히 내려놓은 우성은 남성 직원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화 많이 나셨죠? 배가 고픈 채로 엄청 기다리셨을 텐데... 대신 돈은 안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릇은 늘 두던 자리에 놓아주시면 되고요.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남자 직원은 정말 화가 많이 났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떠한 작금의 미동도 없이, 얼굴을 숙인 채로 같은 자세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성이 다시 한번 그 남자에게 공손히 말했다.
“저에게 이렇게 밖에 화내실 수밖에 없으신 거 저도 당연히 이해합니다. 배가고파서 애타게 기다렸던 라면이 국물은 하나도 없고, 갑자기 면발이 우동 면발로 변해서 배달이 오면, 저라도 진짜 엄청 화낼 겁니다. 그래도 역시 대기업 직원 분답게 성격이 정말 좋으시네요. 저... 이제 다른 곳에 또 배달을 가야 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우성은 그 남자을 향해 정중하게 90도로 인사를 한 후,
철가방을 들고 허겁지겁 사무실을 도망쳐 나왔다.
조금 뒤에 우성이 철가방을 들고 가게로 들어오자, 화난 얼굴의 양휘가 우성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핸드폰은 게임용으로 샀냐? 전화기는 왜 안 가져가서 이 난리야, 너 어디 놀러 갔다, 여태까지 농땡이 치고 왔어? 엉?”
우성은 나름 억울하다는 듯, 테이블에 놓인 자기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명일빌딩이라 길래, 아무 생각 없이 늘 가던 곳을 갔죠. 설마 주문한 데가 오른쪽 명일 일 줄은 몰랐어요. 배달이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식대는 제대로 받아왔어요. 신라면 4천원, 참치김밥 1인분 4천원, 도합 8천원, 자요!”
우성은 자기 지갑에서 8천원을 자연스럽게 꺼내어 양휘에게 내밀었다.
양휘 사장이 갑자기 우성을 한참 쳐다보았다.
“이거 뭐야? 그리고 오른쪽 명일? 너 나가고 바로, 명일 빌딩에서 전화가 와서, 그 직원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오늘 조퇴할거라고, 주문 취소했는데..., 그래도 방금 전에 배달 출발했다니까, 미안하다고 음식 값은 그냥 계좌에 입금해주더라. 역시 대기업 사람들이라 최소한의 양심은 있지. 그건 그렇고 뭐? 오른편 명일빌딩? 이 식대는 또 뭐야?”
“예?, 사장님. 오른쪽 명일 빌딩 라밥남 꺼요.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데요? 음식 받고, 돈 까지 주... 아, 그렇지~ 돈은 아까 미안해서 안받아왔지...”
“어이 뺀질이, 요새 시도 때도 없이 게임에만 열중 하느라, 이 동네 얘기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얼마 전에 회사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대. 바로 그 명일빌딩 라밥남 말야. 나이도 한창인데 참 안 됐지 뭐야“
“예?”
‘그럼 좀 전에 내가 만났던 그 라밥남은 누구였지?’
“들리는 얘기론, 회사에서 적응을 잘 못했다고 하더라고, 거기에 아주 지독한 놈이 그 친구 상급자로 있었다고 하던데... 쯧쯧, 그러다 그만 우울증까지 겹쳐서 갑자기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했다고 하지?”
우성은 갑자기 모든 생각이 정지되었다.
아까 사무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던 우울한 라밥남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사, 사장님. 저 명일빌딩에 그릇 좀 찾으러 갔다올께요.”
우성은 꼭 무엇엔가에 홀린 사람처럼, 빠른 동작으로 가게 문을 다시 나섰다. 양휘는 우성의 갑작스런 행동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흔들리는 가게 문만 계속 쳐다보았다.
우성은 아까 들어갔던 명일빌딩 14층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사무실 문 바깥쪽에 빈 그릇 두 개가 놓인 게 보였다. 그릇은 두 개가 다,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두 손으로 그릇을 드는 순간 바닥에 돈 8천원이, 가지런히 놓인 것이 보였다.
‘어찌된 거지? 아까 그 라밥남은 사장님이 분명히 죽었다고 말했는데, 그럼 아까 그 사람은... 누구야?
이 불어터진 라면은 누가 다 먹은 거지? 또 이 돈은?’
우성은 식대를 주머니에 넣고, 빈 그릇을 철가방에 챙겨 넣은 다음, 다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승강기 쪽으로 크게 몇 발자국을 걷다가, 그 자리에 다시 멈추었다.
우성은 그 껄끄럽고 찝찝한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럼 아까 그 남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러고 보니 정... 정말 사람이었을까?'
우성은 핸드폰 게임 속 전사가 상대편 진영으로 돌격 할 때와 같이, 호흡을 크게 한번 가다듬고는 천천히 뒤로
돌아 아까 그릇이 놓여있던 사무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덧 문 앞까지 도착한 우성은 문에 달린 철재 손잡이를 천천히 당긴 후,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내부는 흐린 날씨에 전등 불까지 다 꺼져서 매우 어두웠다. 안에는 아까처럼 아무도 없어 조용했는데, 주문한 그 책상의 직원 만이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었고, 얼굴을 여전히 푹 숙이고 있었다. 우성은 그 직원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옆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저.. 저기요? 혹시 저희 가게 라면하고 김밥 1인분 자주 시키시던 직원 분 아니신가요?”
우성의 말소리가 들렸는지, 그 남자가 우성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정면에서 본 우성은 너무나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철가방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정면에서는 왼쪽 명일빌딩의 라밥남이, 시커먼 눈알을 위로 치켜뜨고, 무표정하게 우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헉~ 어? 이상하다. 아까 저쪽 명일빌딩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여기는 왜...또?”
[흐흐흐, 이번엔 빈손이시네요?]
오래된 친구처럼 우성을 다정하게 쳐다보는 라밥남의 목 주변에는, 직원 신분증 같은 것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정면에 그 이름이 크게 보였다.
‘영업부 이지한’
지한이 우울한 흰자위 눈으로, 우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여기 컴퓨터 안에 사무실 방문자 이름을 적어야 하니, 이름 석 자 좀, 저에게 알려주세요.]
"예?"
우성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 버렸다.
"저... 저는 전 우 성 인데요?"
[뭐라고 하는지 혼자 우물우물 하셔서 잘 안들리니까, 저 한테 좀 더 가까이 와서 말해 주세요]
우성이 갑자기 무엇에 홀린 듯, 지한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지한이 컴퓨터에서 꼭 사람얼굴 모양 같이 생긴동그란 아이콘에다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며,
메뉴에서 '이름 바꾸기' 를 선택한 후에, 이름 빈칸에다가 우성의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타이핑 쳤다.
전. 우. 성.
우성은 지한이 과연 무엇을 하는 건지 일단 컴퓨터 화면을 같이 바라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성의 몸뚱이가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것이었다.
"엥?"
'오늘 배달을 너무 열심히 하였더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런가?'
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닌것 같았다. 우성의 몸뚱이가 공중으로 '둥둥' 뜨면서
점점, 점점,
그 큰 몸집이 콩알 만하게 작아지더니,
앞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쏙~ 쏙~ 쏙~
꾸역~ 꾸역~ 꾸역~
쏙~ 쏙~ 쏙~
꾸역~ 꾸역~ 꾸역~
먼저 우성의 커다란 머리통이
시커먼 모니터 안에 그대로 들어가더니,
나머지 목, 몸통 부터 해서, 마지막에 발목이 보이는 하얀 운동화 까지
모니터 안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 버렸다.
결국, 모니터 안에는 지한이 조금 전에 실행했던 동그란 사람 얼굴 아이콘 대신
우성의 얼굴 모습을 한 작은 아이콘이 동그랗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지한이 자살하기 직전의 본래의 얼굴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한이 고개를 양 옆으로 까딱까딱 하고는 웃으며,
모니터 화면의 화살표를 마우스로 이동하여,우성의 얼굴을 한 아이콘에다 마구 '클릭 질' 을 하였다.
꼭 새파란 유리벽면에 매미처럼 매달린 것 같은 우성의 아이콘이
갑자기 커다란 화살이 나타나 자기의 얼굴을 여기저기 마구 찌르니
너무나 아파 비명을 크게 지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모니터 안의 우성의 얼굴 아이콘에서도 눈물 그림이 반복하여 그려지고 있었다.
[하하하하핳~]
지한이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으며 양손을 '쭉' 뻗어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의 전원 버튼을 눌러 동시에 종료를 해 버렸다.
지한은 생각지도 않았던 이 모든 상황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휴~ 간만에 사무실 모니터에서 완전히 탈출했네. 이제는 본격적으로 밖으로 한번 나가볼까?
아차차~ 이 컴퓨터 본체는 이 새끼가 영원히 탈출하지 못하게 얼른 망치로 부셔버려야지!]
지한은 책상 서랍 안에 있던 커다란 망치를 꺼내어, 컴퓨터 본체를 향해 높이 쳐들었다가
있는 힘껏 힘차게 내리 꽂았다.
'뿌지직~ 뿌직! 찍찍'
[자~ 한번 더!]
'뿌지직~ 뿌직! 찍찍'
엄청난 충격을 받은 지한의 컴퓨터 본체가 그만 두 동강이 나버렸다.
두동강이 난 컴퓨터를 천천히 바라보며 지한은 나즈막히 말했다.
[내가 세상으로 나오려면 정말 어쩔 수 없었어. 미안.
덕분에 이제 나는 밖으로 이만 나가볼께, 영원히 안녕~ 히히히]
지한은 바닦에 떨어져 있던 지한의 오토바이 열쇠를 집어들고
사무실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다.
/오후 13:30/
지한은 우성이 타고 왔던 오토바이를 다시 타고 우성이 일했던 양재동 분식집으로 이동했다.
[이 새끼가 여기 온걸 분식집 사장은 알고 있겠지?]
/월요일, 오후 13:40. 일과 종료/
조금 뒤, 지한이 한손 에 망치를 들고 가게로 들어와 현관문을 안에서 잠가버린 후,
아무것도 모른 채 커다란 선반 위에 올려진 TV를 보며 깔깔거리던 사장 양휘에게 말했다.
[너도 저 TV 브라운관 안으로 좀 들어가야 겠다!
그런데 네 이름 석자가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