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산딸기를 따러 갔는데 커다란 새가 키이이익 하고 날아오더니 머리를 쪼아서 하마터면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했어 주변에 새 둥지가 있던 거였지
머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노인에게 산딸기를 갖다줬더니 노인이 깜짝 놀라더니 손을 모으고 굽실굽실 하면서 너무 좋아하고 미안해하더래 사례하겠다는데 노인이 행색도 변변치 않고... 산딸기 먹고 싶다고 울면서 도토리 줍던 사람이 얼마나 부유하겠어 그래서 사양하고 그냥 가던 길 갔는데
며칠 뒤 아침에 선비네 집 문 앞에 엉성하게 만든 나무 그릇에 도토리묵 한 사발이랑 산딸기 한 개가 놓여있더래 근데 도토리묵은 맛이 없었대 너무 쓰고 떫고 물컹거리고 그래도 누가 보낸 건지 알겠으니까 선비는 억지로 다 먹었대 그리고 깨끗하게 씻은 나무 그릇에 작은 호박을 담아서 문 앞에 내놨대 혹시 노인이 다시 오면 가져가라고
다음날 보니까 그릇이랑 호박이 사라져있었고 그걸로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얼마 뒤에 밤사이 또 문 앞에 도토리묵이 놓여있는 거야 게다가 여전히 맛이 너무 없어서 눈 꾹 감고 먹었대 호박을 줬다고 사례한 건가 싶어서 이번엔 그냥 빈 그릇만 내놨는데 며칠 뒤에 도토리묵이 또 온 거야
선비가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사양하려고 밤마다 노인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어쩌다 보니 매번 잠들어버렸대
잠을 설치다 보니 몸이 허해진 거 같아서 의원 하는 친구를 찾아갔는데 선비를 본 친구가 헉 하고 놀라더래 자네 얼굴이 왜 이렇게 됐냐고 그러면서 거울을 가져와서 보여주니까 선비도 놀랐어 앞이빨이 튀어나오고 눈가가 거무죽죽했거든
선비 얘기를 들은 의원이 선비가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다고 닭피를 문 앞에 뿌려놓으라는 거야 선비가 그렇게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문 앞에 도토리묵이 놓여있는 일이 없어졌대 시간이 지나니까 이빨도 들어가고 얼굴색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런데 어느날 선비가 산길을 가는데 머리에 뭐가 떨어져서 보니까 도토리더래 올려다 보니까 허리 구부정한 다람쥐가 나무 위에 앉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도토리 하나를 또 던지더니 쪼르르 도망가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