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편 들려고 만든 영화 아냐, 검찰과 언론의 룰에 대한 이야기"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이승준 감독
지난 3년간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이토록 뜨거웠던 이름은 없었을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67일의 임기, 그리고 퇴임과 동시에 진행된 아내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재판 동안 이른바 양극단의 진영이 그의 이름을 서로 다른 목적으로 목놓아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라는 양 날개를 통해 대선 당시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검찰 개혁에 앞장 서려 했지만, 한쪽 날개였던 윤 총장이 조국 일가 수사 선봉장으로 나서면서 묘한 그림이 연출됐다. 결국 윤 총장은 정치신인으로 급부상하자마자 20대 대통령에 당선, 지난 1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여전히 조국이라는 이름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건 그의 등장과 퇴임 과정에서 자녀의 이름까지 온 국민이 알게 된 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과 사법부, 언론이 이른바 조국 사태의 주요 책임자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조국 사태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 들여다보고 싶어"
오는 25일 개봉하는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은 그래서 충분히 논쟁적이다. 제목만 놓고 결국 그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며 일갈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영화에 흐르는 분위기는 냉정하고 차분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12일 이승준 감독을 모처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3월 말인가에 (조 전 장관에게) 가 편집본을 보여드렸다. 저 옆에 앉으셨는데 중간에 몇 번을 나갔다 오시더라. 다리를 계속 꼬거나 움직이길래 영화가 별로인가 속으로 걱정했지. 끝났을 때도 잘 봤다는 말만 남기고 바로 돌아가셨다. 나중에 건너 들으니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 당시에 대한 기억이, 마음이 떠올라서.
전주국제영화제 출품 전 영화를 미리 본 조 전 장관 반응이 어땠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변이다. 애초에 이승준 감독 또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대체 왜 어울리지도 않게 조국에 대한 영화를 찍냐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애인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달팽이의 별>, 세월호 참사를 바라본 <부재의 기억>, 북한 귀환을 원하는 탈북민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자 꽃>을 다룬 이 감독의 작품 세계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의 증명보다는 조국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이 겪은 일에 대한 마음의 무게, 고통이 핵심이었다"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땐 '글쎄요'라는 입장이었다. 제작자 추천으로 <조국의 시간>이란 책을 봤고 충격을 좀 받았다. 조 전 장관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더라. 이전 작품에서 다뤘던 결과 전혀 다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조 장관의 억울함을 강조하지 말자는 거였고, 결국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조 전 장관이 주인공으로 의미 있었지만 제게 중요했던 건 그의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표창장 위조 건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거나 재판을 방청한 사람들, 증인들 목소리가 중요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잘 담기면 조국이라는 사람에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다 생각했지. (정경심의 동료 교수) 장경욱씨, (조권씨의 지인) 박준호씨를 인터뷰하면서 제 예상이 맞았다고 느꼈다.
이승준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크게 조국의 사퇴 과정까지 불거진 전방위적인 언론과 국회, 검찰의 압력, 그리고 표창장 위조 관련 증언을 한 사람들이 겪었던 사법 권력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한 무력감을 다루고 있다. 이 감독은 "지명과 퇴임 과정을 시간순으로 놓고, 언론에선 잘 보도하지 않은 법정 내의 일과 증인들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붙여나갔다"라고 설명했다.
장경욱 교수와 박준호씨, 그리고 동양대 조교분의 인터뷰로 그 사건을 겪은 당사자들 마음을 정서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조 전 장관 또한 그러길 원했다. 영화 출연을 거부하다 결국 동의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으면 하셨거든. 사실 만나고 싶은 인물이 더 많았다.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한 조민 양의 친구, (단국대 교수이자 조국의 대학 동창인) 그의 아버지 등 말이다. 이뤄지진 않았지만 이 영화 이후 그런 분들이 목소리를 더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출연자이자 시사 유튜버) 빨간아재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경심 교수 재판 방청에 주력했던 인물이다. 재판 상황에 대한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을 때 큰 역할을 했지. 영화 촬영 막바지에 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표창장 위조는 정말 반박할 수 없겠다 싶었거든. 그 와중에 IT 전문가 박지훈 대표를 (빨간아재를 통해) 만나게 된 거지. 박 대표님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검찰의 포렌식 결과, 표창장 위조 증거의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 영화에 나온다-기자 주) 본인이 한 방송국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기사가 안 나왔다며 우리와의 만남을 반기셨다.
-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편견에 대해 -
앞서 언급한 일각의 반응대로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에 공개된 이후에도 조국 사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말도 담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범법 행위의 성립과는 별개로 권력자, 가진자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아빠 찬스'에 대한 박탈감이 이번 사건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일부 정서기도 하다.
이에 이승준 감독은 우선 기사나 탐사 프로그램이 아닌 영화라는 매체임을 강조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 목소리를 듣고, 반대하는 사람 목소리도 담으면 균형이 맞춰지는 것인가" 반문하면서 그는 "그렇게 치면 당시 야당 얘기도 들어야 하고, 수사를 진행한 검사들 이야기도 다 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영화가 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전 조 전 장관과 그 사태를 겪은 사람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도 않고 '조국 편들고 있네!' 하는 건 확증편향이라 생각한다. 영화 제목을 지을 때도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조국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확증편향 가능성이 엄청나거든. 시사회 때 영화를 본 한 후배가 편드는 거 아니냐고 말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할 수 없지. 동시에 수많은 매체가 조국 장관 때 그의 얘길 얼마나 제대로 안 들었지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아빠 찬스, 내로남불 비판에 대해) 조 전 장관은 반복해서 굉장히 여러 차례 사과했다. 근데 야당과 검찰, 언론이 합심한 프레임이 강하게 있던 때라 뭔 말을 해도 사람들이 잘 안들었지. 지금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그들이 똑같이 대하고 있는가? 물론 이 영화는 그런 얘길 담은 건 아니지만, 초반에 제가 조 전 장관께 이렇게 물었다. '검찰, 언론이 심하게 한 건 맞지만 결국 (표창장 위조는) 유죄가 맞잖아요'이러니 조 전 장관은 유죄 결정이 나면 존중할 것이고 책임질 것이고,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겠다더라. 그러면서도 방금 말한 그 너무했다는 부분도 찬찬히 좀 보시라고 덧붙였다.
이승준 감독은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선 검찰과 언론의 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라며 말을 이었다.
조국 사태 때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공정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 그게 입시와 관련되다 보니 더욱 커진 면이 있지. 조 전 장관의 찬찬히 지켜보라는 말은 곧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검찰과 언론은 과연 그 (공정이라는) 룰을 제대로 지켰나 보자는 거지. 이 영화에 대해 편향성, 균형을 얘기하는 분들 입장에선 '그래서 조국 잘못이 없다는 거야?'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그 얘길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작년과 올해 뉴스 중 제게 가장 충격적인 게 뭐였냐면 미얀마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왜곡되고 비틀리면서도 여기까지 왔잖나. 결국 많은 것들은 (시민들이) 싸워서 이뤄냈다. 민주주의인데 이제 경찰도 군부도 함부로 못할 시대가 왔다. 근데 유일하게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있었고, 그게 드러난 게 조국 사태였다고 본다.
검찰 출신 인사를 대거 중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이승준 감독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이 영화가 대단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뭘 해결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시발점이 됐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라며 그는 "절차와 룰을 지키지 않는 권력이 계속되면 잔인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우리 영화가 담으려고 한 게 그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선출직인 국회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가 알 수 있다. 행정부나 청와대도 마음대로 뭘 할 수 없다. 국민이 감시하니까. 근데 검찰이 누구를 어떻게 기소하고, 얼마나 구형하는지, 법원 판결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우리가 잘 아는 바가 없는 것 같다. 혹자는 그럼 대법원 판결 난 걸 부정하냐고 하는데 당연히 아니다. 시스템을 부정하려면 길거리로 나가야지. 다만 그 시스템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를 확인하고 견제해야지.
결국 국민들이 기본이 돼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정하려고 하면서 지켜봐야지. 124분이라는 시간에 다 못담은 게 있다. 아쉬움도 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많은 얘길 나누길 바란다. 뭐가 부족한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영화를 완성시키는 건 결국 관객들이니까.
▼ <그대가 조국> 한 장면 ⓒ 켈빈클레인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