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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나의 해방일지
게시물ID : drama_576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빠별
추천 : 5
조회수 : 154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2/06/01 05:09:37

해방일지의 주인공들은 내성적 사람들이다. 오은영박사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내적 긴장감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에 해당하는 이들은 ‘나의 해방일지' 동호회 4인방을 비롯해 아빠 염제호와 구씨.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현아도 그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육아방식에 큰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금쪽같은 내새끼’에 출연한 아이들 중 상당 수가 ‘내적 긴장감이 높은’ 경우다. 육아방식에 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아이는 어른의 언행을 의도와 다르게 느끼고, 어른들은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무척 까다롭고 어렵다. 집에 들어서며 맥락 없이 화부터 내는 경우부터 선택적 함구증까지 발현되는 모습도 다양하다. 많은 경우 ‘오냐오냐해서 버릇이 없다’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 등의 오해를 산다.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 방식과 일반적 어른이 주는 사랑 방식의 거리가 멀기에,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애정이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발생한다. 그렇게 어른으로 성장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품고 살 수밖에 없다.


긴장이란 것은 보통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로 설명된다.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호르몬은 본래의 긍정적 역할이 있다. 운동시합과 같이 더 높은 집중력과 운동능력을 필요로 할 때 작동하여 필요한 능력을 최대치로 높여준다. 위험 상황이나 새로운 도전에 긴장하는 이유이며 때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코르트솔 수치가 매우 높은 것은 맹수에게 쫓기는 상황과 같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잠이 부족해도 졸리지 않다. 맹수가 쫓아오는데 배고프고 졸릴 수 있겠는가. 잠이 들어도 깊게 잠들지 못하고,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전력질주할 수 있는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그 보다 수치가 더 높게 오르면 얼어붙는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이 소리도 못 지르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모습이 그러한 상태.


내적 긴장감이 높다는 것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늘 높게 유지되는 상태, 내적으로는 긴장해 있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타인은 눈치채기 어려운 상태다. 내적 긴장감이 높은 사람은 늘 불안한 상태에 있는 셈이다. 인사를 못하고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는 아이는 불안을 넘어 공포에 가까운 심리상태라 할 수 있겠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긴장감이란 더 높은 능력을 이끌어 주지만, 내적 긴장감이 높은 이들에겐 불안과 공포를 던져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이들의 표정과 행동과 말투에 모든 사람들은 오해한다. 오해만이 가득하다. 사람을 만나는 매 순간이 그러하니 “무엇으로부터 해방인가요?”라는 질문에 염미정은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착한 아이의 비극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안과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전략과 방법을 터득하고 찾아낸다. 성장기의 아이가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이 ‘착한 아이 병’이다. 부모를 비롯한 모든 이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인정을 받을 때 미약하게나마 ‘안전함’을 느끼기니까. 염기정, 염창희와는 다르게 염미정은 힘든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도 부모님의 일을 돕는다, 묵묵히. 이제는 일상화되어 아무도 칭찬하지 않지만 그래야 스스로 편하다, 안정감을 얻는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죄책감이다. 착한 아이가 되어 스스로 쌓은 안전이란 울타리를 사정없이 부숴버리는 것이 죄책감이니까. 죄책감이 몰려오면 내 존재 가치가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소한 실수와 잘못까지 해일처럼 몰아닥쳐 숨 쉬기 어려울 지경이다. 구씨는 스스로 벌을 채택한다. 스스로 미리 매를 맞고 ‘저는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조금만 벌을 내려주세요'하’며 사정한다. 이들이 사소한 불행에 되려 안심을 하는 이유다.


착한 아이병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한다. 착해야 하니까, 그게 착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을 많이 당한다. 가스라이팅을 잘 하는 사람은 누구로부터 배운다기보다 본능적으로 구사하는데, 가스라이팅이 잘 먹히는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염미정과 아빠 염제호는 사기당하고 돈 뜯기고 빌려준 돈을 못 받아도 화를 내지 못하고, 되려 가스라이팅 당하여 죄책감까지 얻는다. 염제호는 ‘그래도 매년 우리 제품을 주문하시는 고마운 분이야’하며 죄책감을 스스로 덜어낸다. 덜어내지 못하면 완전히 무너지니까. 그들의 생존전략이다.


가스라이팅에 지긋지긋하게 당하던 염미정은 팀장과 바람났던 수진의 가스라이팅에 생애 최초 반격을 가하고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결과를 얻는다. 험담 루머와 이간질에 동참하지 않는 내성적 이들은 늘 그들의 타겟으로 정조준당한다. 끊임없이 수많은 모욕을 견뎌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 있는 모든 순간이 불안의 감옥인 태훈,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태어난 게 좋지 않았으니, 어느 아이도 이 불안의 감옥에 갇히는 걸 바라지 않으니, 저 아이는 또 어떤 모욕을 견디며 살아야 할까라는 불편한 마음이 밀어닥치니, 기정의 ‘임신이 아니'라는 소식에 ‘다행이다'라 말한다.


구씨는 운동선수였다. 아마도 높은 긴장감으로 정작 중요한 대회에선 다리가 얼어붙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호빠생활로 들어섰던 게 아닐까 추측한다. 잃을 게 없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가스라이팅. 자신의 뒤통수 친 현진이형은 용서할 수 있지만, 먼저 잘못 해놓고 가스라이팅하는 백화점 직원에겐 한없이 잔인한 이유다. 


내성적인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지만, 가끔 내는 화는 늘 사소한 문제에서 맥락 없이 터진다. 높은 긴장감으로 얼어붙으면 화를 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지만, 적당히 긴장이 내려온 상황에선 화를 낼 수 있기 때문, 다만 그들에게 적당한 긴장감이 타인들에겐 너무도 사소하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스라이팅과 같이 자신이 너무도 부당하게 당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게 되고 그 순간 화를 내는 경험을 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잔인해진다. 정당한 분노. 이렇게 부당함과 불합리함과 화를 내도 되는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가 구씨라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해 축적된 분노가 스스로를 파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경우가 현아가 아닐까 싶다.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완벽주의자들

유순하고 착한 아이가 대뜸 똥고집을 부린다.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똥고집에 주양육자는 속이 터진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가볍고 사소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 계획이 원하는 대로 이뤄져야 안정감을 얻는다. 안 그래도 일상이 불안 그 자체인데 그 계획마저 무너진다면 너무 가혹한 거다. 이것이 진화하면 완벽주의자가 된다. 도 아니면 모, 완벽하게 이룰 자신이 없으면 시작 조차 하지 않는 성격. 일단 시작을 했으면 누구보다 더 높은 완벽성을 추구하는 성격. 그 성격이 불안에 기인한다는 건 간단한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누구보다 높은 집중력과 지구력으로 계획을 완수하는 경험은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몰아붙이는 성격으로 진화한다.


염제호는 일요일에 교회 다니던 것도 포기하고 일을 한다. 불안이 일상인 그는 아들의 대출 이야기에 갑갑한 마음을 표정으로만 드러낸다. 돈을 빌려 ‘갚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불안을 떠안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쉬지 않고 일해야, 착오 없이 완벽하게 수행해 내야 안정감을 얻는다.

현아가 얘기한다. “방전될 때까지 나를 소진시켜야 제대로 산 것 같아.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남아있으면 무거워. 되는 일 없고 이룬 것 없어도, 어쨌든 죽을힘은 다했다.” 

불안의 일상과 야박한 현실의 평가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알코올은 긴장을 완화하고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는 마법을 지녔다. 하지만 술에서 깨는 순간 더 큰 불안과 긴장이 몰려온다. 그래서 구씨는 일어나자마자 빈 속에 술 부터 마신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완벽주의자기에 인정 받았지만 알콜중독으로 위기에 몰린다. 사람을 혐오하기에, 술은 사람들과의 분위기를 위한 도구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의 불안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다. 그러니 혼자 빈 속에 술을 마신다, 술과 밥을 섞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취기가 늦게 오르니까.

 

 

사랑

아빠 염제호는 단 한 번도 친구를 만나러 나간 적이 없다. 가족과 업무관계로 만나는 사람이 전부. 구씨는 잠시 유배생활을 즐겼지만 제호는 삶 자체가 자발적 유배다. 극 중 ‘내적 긴장감'이 가장 높은 인물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성실함으로 가족을 건사한 줄 알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자식이 서울로 떠나고 나서야 ‘가족이 내내 나를 건사했다'는 걸 알아차린다. 채워지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벌어진 불안의 감옥, 가족이 내내 그 사랑을 차곡차곡 챙겨주고 있었던 거다.


현아가 미정이에게 얘기한다. “나는 사랑을 갈망하다가 죽을 거야. 선물도 필요 없고 이벤트도 필요 없어, 그냥 사랑만 줘. 세상 사랑을 다 쓸어 먹어도 안 채워질 거다.”


염미정이 답한다. “잘 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 바닥을 긴다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한다 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부모한테도 그런 응원 못 받고 컸어, 우리.” 미정이는 이를 추앙이라 했고 구씨와 서로를 추앙한다. 그들은 해방되었을까? 

 

 

나의 해방일지

나의 바람과 다르게 딸 아이는 엄마가 아닌 나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어린이집보다 정신과 상담소 문을 먼저 두드린 나의 딸 별이, 나에게 특명이 떨여졌다. 별이를 해방시켜라. 수많은 책을 읽고 상담을 받아도 풀리지 않던 우리 삶의 실타리를 오은영 박사가 풀어줬다. 내 인생을 낱낱이 해부하고 별이 주위의 모든 것을 분석한다. 확실해진 것 한 가지, 내가 노력하면 별이는 나와는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완벽주의자에게 이보다 더 훌륭한 프로젝트가 있겠는가? 오은영이란 훌륭한 선생이 있고, 내가 노력하는 것을 별이가 느끼고 있고, 나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면 6개월 단위로 별이의 변화가 보인다. 부모가 변하는 만큼 아이는 반드시 변화한다. 하루하루 사랑과 행복이 쌓인 저장소를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이렇게 온전한 사랑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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