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만족은 자신의 처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렸다.
만족은 자신의 처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적정이상인 것으로 판단하는지 적정이하로 판단하는지에 달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가 자신이 책정한 적정치 이상이면 처지 자체가 나빠도 만족할수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가 자신이 책정한 적정치 이하면 처지 자체가 좋아도 불만족 스러울 수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적정치는 자신이 판단하는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 있는 타인을 참조해서 책정이 된다.
다시 정리하면,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그 참조치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족 스럽고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그것이 그 참조치를 넘어서면 만족스러워 할수 있다.
즉, 만족은 자신의 적정치를 누구를 참조하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만족에서 참조치 설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과 비슷한 입장의 사람을 높게 설정해서 참조치가 높아지면 불만족스러운 일상을 가능성이 크고(대신 성취가능성도 큼)
자신과 비슷한 입장의 사람을 낮게 설정해서 참조치가 낮아지면 만족스러운 일상일 가능성이 크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한다면, 그것은 만족과 노력에 대한 참조치를 자신의 절실하고 열악하던 시설로 설정하겠다는 의미다.
급여가 100만원 올라도 다른 사람이 200만원 올랐다면 불만족스러울 수 있고, 이 보다 오히려 자신만 오른 10만원 급여가 더 만족할 수 있다.
급여가 조금 내려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경질된 상황이라면면 자신의 급여에 만족할 수 있다.
일에 대한 만족도 마찬가지다.
일 그 자체는 힘들어도 그것에서 적정이상의 보상이 예측된다면 그 일에 진심으로 임할수 있다.
힘을 쏟을만한 가치가 느껴지는 일이라여 진심으로 임할수 있다.
사막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를 바늘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일과 달리
동굴에 갖힌 상황에서 바깥으로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땅을 파는 일이라면 혼신을 다 할 것이다.
적정치 설정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출처 | 문득 떠오른 정리되지 않는 그러나 놓치고 싶지는 않은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