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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 살 때였나.
우리 이모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쫓겨나 우리 집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해 추석을 앞두고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심각한 갈등으로 번져,
이모가 시댁을 뛰쳐나와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이모부는 당황했지만 시어머니가 오기를 부리는 바람에
두 사람은 별거한 채 해를 넘기게 되었다.
이모가 시댁으로 돌아간 건 이듬해 설날을 하루 앞둔 아침이었다.
이때 중재를 맡은 이가 이모 부부의 지인이던 청공이라는 사람인데,
흡사 무속인 같기도 하고 도사 같기도 한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어깨너머 배운 솜씨로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다.
처음에는 주변 지인들이 청하면 알음알음 그려주었던 모양이다.
한데 청공의 그림에 점지 영험이 있다는 평판이 돌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임신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기쁨의 환호성을 올린 부부가 몇 쌍이나 된다고 한다.
우연이었겠지만 분명 좋은 일이므로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고,
소문이 퍼지자 각지에서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자 청공은, 교만하게도 칠성신이 솜옷에 싼 아기를 안고 있는 그림까지 그렸다.
그런 사람이 이모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중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침 설을 앞두기도 했고.
“이 그림으로 새해 첫 꿈을 길몽으로 꾸세요. 반드시 수태하게 될 테니.”
결국 ‘명성이 자자하다는 청공의 그림’으로 이모와 시어머니는 화해했다.
이모는 그날 밤 그림을 베개 밑에 넣고 잤다고 한다.
칠성신이 솜옷에 싼 아기를 안은 채 배에 타고 있는 그림을.
그리하여 바라던 대로 길몽을 꾸고 바라던 대로 임신을 했다.
어디선가 금빛 공이 굴러와 이모의 배로 들어오는
그야말로 누가 들어도 길몽이 틀림없는 꿈이었다.
뱃속의 아기는 ‘개똥’이라는 태명으로 불렀다.
소중한 아기에게 하찮은 이름을 주어 액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이모도 참 미신 좋아한다.
마침내 열 달이 되자 옥동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개똥이는 여자아이의 옷을 입혀서 딸처럼 키웠다.
사내아이에게는 마가 끼기 쉬우니 그리 해야 한다면서.
이모 부부는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개똥이는 잘 자랄 겁니다”
라며 이웃 사람들이 말을 보탤 정도로 이런저런 미신을 요란스럽게 따랐다.
그런데――,
개똥이가 덜컥, 죽은 것이다.
이모는 출산 후 몸이 약해졌지만 젖은 잘 나왔으므로
개똥이도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이유식도 먹게 되었다.
그 이유식을 시어머니가 탔는데.
사건 당일 아침.
이모가 기저귀를 채우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보니
개똥이가 숨을 쉬지 않더라는 거다.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나 숨을 거둔 뒤였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개똥이의 장례를 치른 뒤 이모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이모부는 해골처럼 야위어 갔다.
급기야 시어머니도 몸져눕고 말았다.
그랬다.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알아채지 못했다.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한없이 어두워진 집안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바꿔 보려고
이모네 집을 찾은 나와 우리 엄마가 대청소를 시작했는데.
그때 이모 부부의 침실에 있던 책상을 옮기다가
서랍이 빠지는 바람에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면서 청공의 그림도 함께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림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한 사람은 이모였다.
원래 청공으로부터 받은 건,
칠성신이 솜옷에 싼 아기를 안은 채 배에 타고 있는 그림이었지만.
책상 서랍에서 떨어진 그림에는,
어째서인지 배만 덩그러니 있을 뿐 칠성신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기를 안고 배에서 내려 버린 것처럼.
아기를 점지해 준 칠성신이 변심하여 아기를 다시 데려가 버린 것처럼.
이모는 겁에 질려 경련을 일으켰고,
집안은 난리가 났다.
대관절 이게 어찌된 일일까.
궁금하신 형제자매님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읽어봐 주십시오.
미신을 믿고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의 음모를 파헤치는 내용인데,
일본보다는 차라리 요즘 시국의 한국 독자들이 읽는 게 더 마침맞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