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석입니다. 양보와 배려는 굳이 저자리가 아니더라도 같은 량에 탄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맞은편 일반석에 앉아서 저자리에 앉은 일반 (눈치없는 사람들은 남녀 나이를 불문) 인들에게 눈치주기 전에 내 자리에서 일어나서 양보해주면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요와 의무가 아닌 양보와 배려석이니까요.
감시를 한다면 '배려석'이 아니죠. 그냥 등받이에 '임산부석'이라고 크게 인쇄하고 빨간색으로 벽에다가 임산부 그림을 크게 해서 붙이던가 해서 아예 임산부석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할 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저런 감시카메라가 있는 상태에서 배려라는 표현은 쓰지 말고 '임산부석' 이라고 표시를 확실하게 해야 함.
저렇게 센서 달아놓고 소리까지 나오는 건 좀 상호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긴하네요 ㅠㅠ 근데 어디서든 비워놓는다 vs 있으면 비켜준다로 늘 얘기가 나와서 관련 의견을 덧붙이자면, 제가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임산부인데 노약자석처럼 비워놓아주시면 큰 배려가 되더라고요.. 요즘 고위험군 임신이 많아서 초기 유산도 더 많고 말기 못지않게 힘든 경우가 많은데 배가 안나와서 양보 받지를 못하고, 뱃지 달랑거리면서 비켜달라고 앞에 서기도 민망해서, 지하철 탔는데 임산부석에 사람 있으면 그냥 포기하고 문 옆에 서요. 심지어는 기를 쓰고 뱃지 못본척하는거 느껴지기도 해요..;;
가뜩ㅇㅣ나 출산율 낮은 나라가 쥐어짤 수 있는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배려를 강요한다 반발하지만 실제로 양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저런 망신주기가 등장했다봄.캰 끝의 노약자석은 자리가 있어도 안 앉는 분위기라면 임산부석은 신경쓰지 않고 그냥 앉음.임부가 나타나면 비켜준다지만 과연?
왜 우리나라는 무언가에 꽂히면 뇌절을 할까? 임산부 배려 다 좋은데, 배려는 배려로 이야기를 해야지 저건 강요아닌가?
여성 인권을 외치던 페미도 뇌절을 치는바람에 여성이 피해보는걸 말하기 힘들게 만들질 않나 장애인 인권 외치던 전장연도 뇌절을 치는바람에 시설이 꼭 필요한 장애인들은 졸지에 쫒겨날 판이 되버렸다. 버스에 1인 좌석은 전부 노약자/임산부석으로 바뀐지 오래고, 지하철도 저걸 저렇게 강조하고 있으니 이제 노약자가 노약자인게 눈치보일 판이다.
그리고 애초에... 버스나 지하철에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을 나눌 필요가 있나? 노약자는 노인 + 약자 인데 임산부는 약자에 포함되니 그냥 노약자석에 앉으면 되는거 아닌가? 노약자에는 임산부도 포함된다는 안내문을 붙이는게 맞지않나?
임신부 배려석이지만 실질적으로 임산부가 못 앉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와이프가 임신전에는 그냥 배려해주면 되겠다 싶었었는데 임신하고 난뒤에는 생각이 바뀌더라구요 조금만 서있어도 힘든 임신부들인데.. 지하철 탈일이 있으면 저 앞에가도 안비켜주는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구요. 와이프도 말못하고 앞에만 서있는데 양보해주시는 분들이 실제로 별로 없어요. 비켜달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해코지 당할까봐 말도못하고 그냥 서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라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비워둬야지 눈치보지 않고 앉습니다.
와이프가 임신 전에는 임신부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임신 후에는 관심사가 그쪽으로 많이 가다보니 실질적으로 양보가 안되고 있다는게 많이 보이더라구요.
임신은 개인의 일입니다. 나의 개인적인 불편함을 덜기위해 타인을 강제하는건 더이상 배려가 아니죠.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같은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편의를 제공하는건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기본으로 다소 불편한 이 들이 있을때 각자의 재량에따라 조금씩 양보하자는것이 이런저런 배려석인거죠. 배려는 해주면 감사한 일이고 안 해준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를 위해서 임신하시나요? 아니죠. 노인 부양을 위해서 사회적 노동력의 감소를 걱정해서 임신하시나요? 누군가와 그 반려자가 꾸리는 가정과 그 곳에서 자라날 행복의 결과로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과정과 결과가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복하는 것이구요. 이래서 개인의 일이라 말씀드립니다. 그 다음에 세금이고 노동력이고 부양이고 뭐고가 따라 붙는 것이죠. 임산부석에 경보음 울린다고 출산률 늘어나는것 아닙니다. 배려를 강요하기 시작하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날선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마냥 곱지않게 중간 어디쯤에서 바라보던 시선들이 고깝지 않게 바뀔 수 도 있구요.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데 저건 과합니다. 예전 배려석 같은것이 없었어도 배부른 임산부를 보면 자리를 내어주던 모습들이 사라진건 배려를 강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려가 사라진 각박함이 문제입니다.
참 말귀 못알아듣네. 저게 그렇게도 거부감이 들 일이에요? 저게 뭐 얼마나 대단한 배려라고 이리 난리들이실까..
님 어머님도 님 임신했을때 임신부셨을테죠.. 아마도 제가 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테니 그때로 돌아가서 님 어머님이 전철에서 힘든 몸을 이끌고 제 앞에서 양보를 기대하고 계신다면 이렇게 얘기했을텐데요.. 이 배속에 있는 아기는 왠지 배려를 강요하지 말라고 할거같은데요.. 아주머니 힘드신건 개인의 일이죠.. 내 알바아님..
참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네요.
사회적 배려라는건 당연히 강요되어서는 안되죠.. 하지만 인간은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만 그 배려가 절실하다는걸 깨닫는단 말이에요. 그러니 자신은 살면서 다른사람의 배려를 받은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거라고 믿는 모자란 인간들은 어느정도 깨우쳐줄 필요가 있단말이죠
저 임신하고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앉아보지 못함. 대놓고 뱃지 달고 다녀도 양보 못받음. 저기 앉아서 딱 눈 감고 자는 척하던지 핸폰 보잖아. 누가 옆에 임산부가 와도 알고 비껴주는 사람이 없음. 임산부 입장에서 임산부 좌석이 있어도 앉지를 못하는데 왜 만들었을까가 됨. 저 센서가 망신? 을 주게되면 쪽팔려서 임산부 아닌 사람들은 좀 꺼려지겠지. 그냥 좀 비워 놓자.
말 그대로 ‘배려석’이니 그 자리에 임산부 아닌 누구든 앉아도 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앉았다면 최소한 눈치는 살펴야죠. 진짜 그 자리에 앉아야하는 사람이 왔을 때 비켜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앉고 나서 핸드폰 보거나 자거나.. 몰라서 못 비켜주거나 알고도 안 비켜주거나 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앉아야 하는 임산부는 못 앉게 되고 임산부 입장에서도 이럴거면 뭐하러 만들었나 싶게 되고 양쪽 다 불편한 자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센서까지 만든 건 저도 좀 오버 같다 생각은 듭니다만 오죽하면 어쩌다가 저렇게까지 하게 됐을까 이해는 됩니다. 저도 임신했을 때 양보 받은 적이 참 드물거든요. 배려석엔 늘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고요. 일어나라 말하면 되지 않냐 하지만 막상 쉽지 않아요. 모르는 타인에게 일어나라마라 입 떼기도 어렵거니와 대부분 출퇴근길이다보니 만원 지하철이라서 이동 자체도 힘들고 막말로 저 사람이 미친 또라이라 나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도 모를 일이고요.
저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다만, 앉으실거라면 모두 내 앞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지 한번씩 지켜보시고 진짜 임산부가 오면 그때 꼭 양보해주세요. 그게 ‘배려석’에 앉은 분의 의무 아닐까요? 이게 싫으시면 일반 좌석 앉으시면 되겠고요. 양보만 제때 잘 해주셔도 저렇게 센서까지 다는 일은 없었을거라 생각되네요.
아예 다 없애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저도 만삭 겪어보니 저런 장치라도 없으면 정말 자궁 내려앉을 정도로 힘들어도 양보 받기 어렵겠고 노약자석에 앉으면 노인들이 그렇게 꼽을 줍니다… -_- 해서 저렇게라도 있는 것은 찬성이고, 다만 임산부 아닌 분들이 앉은 경우 임산부가 탔을 때 양보만 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다리가 아파서 저 자리에 앉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어캣 처럼 주변을 살피면서 앉아 가는 동안, 주변에 다 남자들 밖에 안 보이고 승차 시간도 짧아서 자리 내 드릴 일은 없었습니다. 저야 다른이가 자리의 주인이라고, 당연히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앉아 있었는데...
눈치 안 보는 빌런들은 센서에서 소리가 나건 말건 앉아서 안 비킨다는 데 500원 걸고 싶습니다.
심보? 지금껏 여자든 남자든 아이들이든 누구든 조금만 불편해 보이면 무조건 양보하며 살았고 조금만 무거운 짐 들고 있으면 다 들어주면서 살았고 주변에 누구 앉을 사람 없을 때까지 기다리다 아무도 없으면 그때서야 앉으며 살아왔는데 더 이상 심보를 얼마나 좋게 써야 할까요 그런데 저 정책은 잘못된 정책이라 지적하는 겁니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면 사회는 이상한쪽으로 계속 크게 잘못되어가죠 여성전용주차장이 가장 큰 예죠 저런 걸 보면 제발 과하게 지적하세요 그게 옳은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앞에 있는 사람이 임산부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어요? 배가 불렀나 안불렀나 체크해보고? 임신아니고 그냥 배나온 사람이면 ? 아니면 앉아서 가는 내내 앞에 있는 여성이 임산부인증 뱃지가 있나 없나 체크 하게요? 진짜 임산부 입장이 되어보면 자리가 비어있으면 그냥 가서 앉을 수 있는데 누가 앉아있으면 그 자리 앞에 서있기도 민망하고 자리 근처에 서 있어봤자 임산부인지 못알아보는데 무슨 수로 알아서 비껴준다는건지? 그냥 좀 비워 놓으면 되는걸 뭐가 잘 못된정책인가요? 좋은 아이디어있으면 공유좀 해봐요. 지적만 하지말고
같은 의미죠 배 안 나온 여성이 앉아 있으면 다들 눈총을 주죠 표 나지 않는 여성이 임산부석에 쉽고 편하게 앉아갈 수 있을까요? 또 같은 의미로 노약자석도 마찬가지죠 나이는 어린데 더욱 심각한 장애와 질병이 있는데 표가 나지 않는다면 노약자석에 편히 앉아 갈 수 있을까요? 다들 좋지 못 한 눈총을 주고 노인들은 대놓고 욕을 해 댑니다. 저도 정말 힘들고 몸이 아파서 서 있기 힘들 때도 그런 것 때문에 노약자석에 앉질 못 하고 서서 간 적이 많습니다. 스스로 주장하는 그 주장 때문에 문제가 있는 거라 지적하는 겁니다. 정작 앉아서 가야 할 사람은 이용을 못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배려석이라면 우리 어릴 적엔 약간만 연세가 있어 보이면 먼저 비켜줬고 노인들도 임산부를 보거나 약간만 힘들어 보이는 젊은이를 보면 다들 비켜줬죠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자면 다들 눈치 보여서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받지 못 하는 게 현실이죠 게다가 저렇게 강압적으로 강권하면 사람들은 더욱 반감이 심해서 노약자석도 아닌데 내가 왜 비켜줘야 하냐 또 한 법적으로나 민원을 제기하면 저걸 무슨 명분으로 계속 할 수 있을까요 이 간단한 문제를 이렇게 길 게 설명해야 할까요? 임산부석이든 아니든 힘들어 보이거나 저 임산분데 부탁드린다고 하면 어느 석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도 양보해주는 게 미덕이로 옳은 것이죠 강제는 결코 좋지도 옳지도 않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해서도 안되는 방법이죠 .
임산부 배려석이 왜 생겼냐면 임산부는 경로석에 앉아도 됨. 그런데 임신부가 경로석에 앉았더니 미친 할배가 젊은 여자가 경로석에 앉아 있는다고 너 진짜 임신한 거 맞냐고 옷을 걷어 올리고 배를 때렸음. 그런 일이 한 건만 있는 게 아님.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어르신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욕부터 박음
그래서 분리 시킨 거임
말 그대로 배려석인데 왜 저렇게 까지 가냐면 일단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없음. 앞에 임산부가 서있어도 안 비켜주는 경우가 많음. 그 다음으로... 이건 오유 성님들이 좋아하는 얘기임. 임산부가 없는 상태에서 남자가 앉아 있어도 그걸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거나 민원 넣는 인간이 그렇게 많음 그러니 도시철도공사에서도 저렇게 하는 거임. 업무가 안 되니까
그러나 저건 잘못된 방식이죠 . 원론적으로 접근해야지 쉬운 방식으로 접근하면 후에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죠 계몽과 사회운동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임산부에게 배려하게 해야지 저렇게 기준을 정해 놓으면 사람들은 정해주지 않는 배려는 전부 사라지게 됩니다. 이건 사회를 더욱 상막하게 만드는 것이죠 자발적인 배려는 언제나 교육에서 나오는 것이지 태어나면서부터 배려심을 가지고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 제가 보기엔 좋은 해결책은 아닌 듯하네요
1칸은… 닫힌 공간을 세는 단위. 일부 한자어에서 間(본음은 '간')이 들어간 한자어를 칸으로 읽는 용례가 있다(예 : 단칸방(單間房))
한옥 등 옛날 건물의 규모를 말할 때 칸 수로 크기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기둥 4개가 귀를 이루고 그 귀 사이의 변에 벽을 쳐서 만들어진 사각형의 공간이 한 칸(간) 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4개 이하의 기둥으로 사각형 공간을 만들 수는 없고, 우리나라의 옛 전통에는 삼각형 건물을 만드는 풍습도 없었으므로 이 '한 칸(간)'이 건축물의 최소 단위가 되고, 모든 건축물은 기둥 개수를 늘려 한 칸 한 간을 이어가는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흔히 사용하는 초가삼간[1]이나 구십구간 기와집[2]같은 표현이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칸은 단순히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을 세는 식이어서 규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의 기준은 있었을 것이다. 공학기술의 발달로 기둥 없이도 엄청난 면적의 건축물을 지탱할 수 있는 현대 건축과는 다르게 옛날 건물에서는 벽과 지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분한 개수의 기둥을 적절한 간격마다 배치해야 했다. 간격을 너무 좁게 배치하면 건축 비용이 올라가고(기둥감으로 쓸만한 좋은 목재는 상당히 귀하고 값진 물건이었다) 공간이 협소해질 것이고,[3] 반대로 너무 간격이 넓어지면 당시의 공학적 한계상 건물을 지탱할 수 없을테니까 필연적으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배치될 수 밖에 없다. 조선 세종 때에는 1칸을 8자로 정했다. 현재는 1자가 약 30.3cm이지만 세종 때에는 1자가 약 31.22cm였다고 하니 1칸의 넓이는 약 6.24m²가 된다.
저자리에 앉아서 임산부가 와도 안비켜주는 사람이 많다고?????? 임산부 자체를 길에서도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거의 본적이 없는데.....더군다나 저자리에 앉아서 안비켜주는 사람 때문에 서있는 임산부가 많다고??????
노약자석처럼 자리가 비어있어도 아무도 앉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나마 저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주머니들 젊은여자들 그리고 아저씨들을 가끔 봤는데... 게다가 코로나때문에 이번년도 봄까지만 해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지하철 자체가 눈에 띄게 한산해 졌는데....대체 무슨소리를...ㅡㅡ 이런게 뇌피셜인가??
개인적으로 출근이 10시반이고 퇴근이 불규칙하며 종로, 동대문, 건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낮시간에 임산부석에 누가 앉아있는것 자체를 보기 힘들었고 가끔 사람이 앉아있어도 중년남녀, 젊은여자들 뿐이었음....에휴..
임산부석을 배려하든 강제하든 어느쪽도 상관없음 남자입장에서는 대한민국어딜가든 타인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있음 남자는 힘쎄고 체력이 좋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맘 편했던적이 없음 이젠 눈앞에 자리가 비어도 앉기 싫고 귀찮을 정도임
임산부석이 배려든 강제든 임산부석이란게 있기 전에도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도 내자리라는 생각자체를 안하고 살았음 내 주위 남자들 다들 이런식으로 살아왔음
에휴....왜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 먹는 사람들이 있는걸까? 내가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 한산하다고 했나??? 분명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지하철 자체가 눈에 띄게 한산해 졌다고 했는데..이건 뭐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이전 보다도 더 여유가 있었고 애초에 자리가 많이 나는 상황이 많았다는게 이해하기 어렵나?
그리고 옴짝달싹 못하는 출퇴근 시간에(특히 출근) 임산부배려석이 의미가 있나? 출퇴근 시간 또는 강남역 근처의 자주 지하철이 가득차는 곳에서 사람들이 꽉들어차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무의미가 없고 그 이외의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고 비켜줄수 있는 시간 또는 상황에서 지하철 뿐만 아니라 길에서도 버스에서도 애초에 임산부들이 돌아다니는걸 보기 흔치 않았으며 출퇴근 이외의 시간대에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임산부배려석 뿐만 아니라 다른 자리도 자주 비어있는 상황이 많았다는 말이 이해가 안되나? 이런 상황에 임산부배려석에 앉아서 임산부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쉽게 말을 하는게 뇌피셜인것이지...ㅉㅉ 이게 이해가 안되서 저랑 같이 매일 출퇴근 해보실래요??? 라고 엉뚱한 소리를 해가며 억지로 말꼬투리 잡는건 그냥 임산부석 차지하고 양보안하는 사람 많다고 말한게 근거없는 뇌피셜이었음이 찔렸어서 발끈하는거라는 반증
그저 이런 사회적 약자에 관한 내용을 보면 뇌피셜로 과대과장까지 해가면서 확대해석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비난과 비아냥을 하는 사람들이 꼭 어딜가나 있는데....에휴.....ㅉㅉㅉㅉㅉㅉ
중학교 1학년 입학하면서 받은 도덕책에 나온 도덕의 우선순위에 대한 내용: 중학교 다니는 철수가 학교 오전 수업 중 어지럽고 기침이 나고 열이 나서 조퇴를 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서 20 정거장 가야 집이라 앞쪽 자리에 앉았는데 10 정거장 쯤 자리는 다 앉았고 정류장에서 더 타는 상황이 되었는데 한 할머니께서 내 쪽으로 오셔서 손잡이를 잡으셨다. 철수는 어지러운 증상이 있어서 창 밖을 보며 앉아 있는데 할머니는 헛기침을 하신다. 철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전 그때 일어나겠다고 생각했고 현재까지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만약 누가 그런 상황을 물어보면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3남매 중 둘째로 자라서 그런지 양보가 미덕이라 생각하며 자란 결과겠죠. 가치관이란...
그리고 경로석도 사실 …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경로석이 비어 있어도 일반좌석에 항상 앉으시고… 그게 잘못된건 아니지만 .. 어디에도해당되지 않는 나이대, 성별의 사람들은 앉을 좌석이 부족하긴하죠. 특히 버스같은 경우는 노약자, 장애인, 여성배려좌석을 제외하면 좌석이 별로 없죠 ㅎㅎ
예전부터 누누히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저런 식으로 대중교통 이용고객을 치사하게 기만할거면 기왕 할 거 제대로 치사하게 해 보죠. 차라리 저 좌석을, 임신 사실이 명확히 입증된 임산부에게만 창구에서 별도의 요금을 받아 판매하는 '좌석권'으로 하여금 좌석 이용을 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이게 더 합리적일걸요? 입증된 임산부에게만 좌석권이 판매되어야 하니 당연히 창구에서도 뱃지 지급이나 승차권 판매에도 신중을 기할 수 있게 되고, 증명이 되지 않은 자가 무단으로 구매해갔다고 해도 그 부분에 대해서도 치죄할 수 있게 되며, 임산부의 해당 좌석 이용권은 이제 시민들의 상호배려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도시철도 운송약관이나 철도사업법 등으로도 정식으로 명문화되어 보호받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가령, A라는 임산부가 17시 35분에 B역에서 제5631호 전동열차에 탑승해, 10량짜리 전동차 중 3호차의 임산부배려석 1C호석에 착석하여 15분 정도 이동한 뒤 D역에서 내린다고 칩시다. 그럼 이 시간 동안 해당 좌석은 A에게 이용권리가 법적으로도 우선 할당되며, 뱃지와 승차권을 지참한 임산부가 이를 내보이며 이석을 요구했을 때 남녀노소 막론하고 이 요구에 멋대로 불응하는 이는 이제 '정당한 좌석 이용권자에 대한 부당한 권리 침해'로 간주해서 기관사나 차장을 불러서건, 아니면 아예 철도특사경이나 지하철경찰대를 출동시켜서건 조치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물론 임산부가 이용하기 전의 공석 상태인 임산부배려석은, 똑같이 운임 지불하고 탑승한 전철 승객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자유석'으로 운용하는 거고요. 새마을이니 무궁화니 하는 열차들도, 자유석 승차권을 발권받은 사람들도 해당 좌석의 이용권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해당 좌석을 이용할 수 있되 해당 좌석에 대한 승차권을 보유한 이용권자가 나타나면 즉각 비켜줘야 하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