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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환과 가족들
게시물ID : history_304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만주계장수
추천 : 1
조회수 : 16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9/16 10: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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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독립운동가들의 가족 수난사야 어제 오늘의 일들은 아니지만...

독립운동가 양근환의 가족들 또한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양근환(梁槿煥, 1894-1950)은 국내에서 완용 살해 미수 이후 와세대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한다.

도쿄에서 일본 통치에 협력해야 한다는 참정권 운동을 벌이던 친일파 민원식을 도쿄 스테이션 호텔에서 살해했다

상하이로 갈 것을 결심하고 가던 중 관부연락선 기착지 시모노세키에서 붙잡혔다는 증언도 있고

나가사키에서 상하이 행 타고 가려다 잡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근환 가족이 갈데가 없어지자 동료 유학생 박순천, 임아영 등이 교포 박춘금 집에 집을 얻어 주어 

양근환 아내와 두 딸을 살게 했다. 

 

양근환이 재판에서 무기징역 언도를 받자 부인은 아이를 한국 시댁에 부탁했다.

네 살, 두 살을 데리고 여자 유학생들이 양근환 아내와 동경역에서 7시 기차를 탔는데 

젖을 먹이고 나서 엄마가 사라져 버렸다. 

두 살짜리는 밤 11시까지 울었다

 

여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두 아이를 데리고 젖동냥을 하다가 

간신히 부산에 도착해 마중 나온 양근환의 고향 친구 신현섭에게 아이를 맡겼다

 

두 살짜리는 병을 앓다 죽었고 네 살짜리는 아빠가 갇혀있던 감옥을 갔다 와서는 

우리 아빠집은 참 크다라고 자랑했다

 

후일 이화대학에 다니다 6.25때 죽었다

 

양근환은 가석방 출옥 후 해방 후 우익 운동에 가담했다

송진우 암살 사건과 여운형 암살 사건의 관련자 내지는 배후로 의심받고 미군정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자택에 있다가 1950년 한국 전쟁 중에 피난하던 길에 

75일 후퇴하는 조선인민군에게 납치되어 

경기도 파주시에서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915일경 처형당했다.

 

두 딸의 인생이 너무 슬프고 참담하네요....

 

출처 박순천의 증언 및 민족문화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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