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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wedlock_146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카라라★
추천 : 11
조회수 : 16462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23/09/28 04:47:31
어느날 아침, 남편이 잠에서 깨어나요.
침대엔 아이만 있고,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집안은 늘 그렇듯 평화롭고 고요해요.
남편은 일어나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거실로 나와요.
거실에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화장실에 갔나? 싶어 보니 화장실 문은 모두 열려있어요.
운동갔나? 싶어 현관을 보니
아내의 운동화는 그대로 있어요.
그리고 항상 열어두는 복도 제일 끝방, 서재 문이
닫혀있는 걸 발견해요.
남편은 무심코 걸어가서 서재 문을 열어요.
그리고 목을 맨 아내의 시체와 마주 해요.
그러고 나면,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소리를 지를까? 주저 앉을까? 패닉에 빠질까? 아니면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을 할까? 경찰에 먼저 전화를 할까? 아니면 가족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할까? 한다면 우리엄마? 자기엄마?
남편의 반응이 전혀 예상이 안되기 때문에
여기부터가 아주 재미있어져요. 혼자 상상하는 거지만요.
이것저것 망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있자면
뭔가 간지러운 설레임 같은게 올라와요. 배꼽 아래에서부터요.
그리고 제가 이 망상의 나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건데
늦든, 빠르든 남편이 나의 유서를 발견하는 거예요.
유서엔 이렇게 쓰여있어요.
당신이 평생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어.
평생토록 후회하고 고통받고 절망했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 인생의 가장 끔찍한 실패가 되길 바라.
사랑해♥
깍 유치해//_//ㅋㅋ
유치뽕짝이지만,
아무튼 이 부분까지 상상하고 나면
마음이 몽글몽글하게 벅차오르다가 마침내 팡 터져서
어딘가 나른한 만족감을 느껴요.
그러고나면 다시 또 평범한 웃는 아내 웃는 엄마로 돌아갑니다.
왜 이런 상상을 하게 됐냐면요.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이상하게 기분이 고조되고
그게 스트레스 해소가 되더라구요.
처음엔 그냥 내가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뭘까?
에서 시작한거 같아요.
하지만 내가 뭘 깔짝댄다고 이미 굳건한 남편의 정신세계에
도저히 영향을 미칠 거 같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어요. 절대로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일이
일어난다면, 예를 들면 집에서 자살한 아내의 시체의 발견하기 같은.
가장 편안하고 안락하게 누려왔던 공간이, 지옥으로 변하는.
그정도면 이 사람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INFP답게 상상에 상상의 나래를 더하다보니...
...어느새 마치 30초 내외의 릴스나 쇼츠처럼,
영상으로 생생하게 떠올려볼 수도 있게 됐어요.
그런지가 몇개월 정도 된 거 같아요.
써놓고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거 같네요.
제 남편은 평범하게 직장생활하고 평범하게 아이를 사랑하는 가장입니다.
주사 폭력 바람 없어요ㅋ
다만
아내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요.
제 생각에 저는 원래 능력치가 1인 사람인데
결혼생활을 위해 무리해서 1~5를 해내고 있으며
그런 내 자신을 스스로 대단히 기특하게 여겨왔습니다만
불행히도 나의 남편은 5까지는 무조건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이었고,
본인의 아내는 5를 넘어 6~10을 해내야 하는데
왜 그걸 못하는지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안타까워 해왔죠.
그와 관련한 수차례의 갈등을 넘어,
이제 나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콧방귀나 뀌고 말 정도로
무뎌졌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지친 목소리로.
더이상 너에게 잔소리도 기대도 하지 않겠다. 내가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안되겠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에서 뭐가 뚝 끊어졌어요.
이성적으로는 지혼자 기대하고 지혼자 실망하고
북치고 장구치네 얼씨구? 웃어넘기면 되는데
그냥 뭐가 툭 떨어졌어요. 마음에서.
세상 사람 모두가 날 믿어주고 좋은 평가를 내려준다 해도
난 평생 단 한 사람, 내 배우자에게만은 인정받지 못하는구나.
겨우 이게 뭐라고
그때부터 남편에 대한 소리없는 분노가 쌓이기 시작한 거 같아요.
여전히 웃고 떠들고 쾌활하게 지내면서도
가끔 소리없이 날 비난하는 것만 같은 남편의 눈을 마주할 때면
숨이 턱 막히고 밉다. 복수하고 싶다. 내몸을 불살라서라도
네 인생을 망쳐놓고 싶다.
뭐 이런 억하심정에 혼자 고통받다가ㅋ
마침내 "내시체를처음발견하는남편의자세" 같은 스토리를 하나 써놓고
힘들때마다 가끔 꺼내보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혹시, 저 좀 미친 여자 같나요?ㅠ
하지만 의외로 저는 사회생활도 잘하고 친구관계도 원만하답니다.
회사에서는 팀장님이 어디 너같은 인재 또 없냐며 어화둥둥 해주고요
그럴때마다 겸손따윈 개나준듯 하하하 저같은 인재가 흔치 않죠!
라며 한껏 자아도취를 만끽하는 왕뻔뻔당당녀고요
나름 인생친구라 꼽을 좋은 사람들도 곁에 꽤 되어서
주말이면 이집 저집 놀러다니고 사람모아 여행다니기 바쁩니다.
내가 봐도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 남편도 나름 좋은 사람이에요.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된건지 그사람이 잘못된건지 아니면 사실 둘다 멀쩡한데
둘이 만난게 잘못된건지......
아무튼
이또한 지나가리라.
물론 상상은 상상에서만 끝내고요.
어느집이나 결혼생활 8~10년차 위기가 한번씩 온다는데
권태기려니, 하고요.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요.
5년 10년 후에 내가 써놓은 이글을 다시 보며 피식할 날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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