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쩌면 모든 게 필요했다
내가 가진 건 별로 없었으니까
열다섯의 수줍음 많은 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이 없다는 건 때로 용기를 주기도 했나 보다
집 근처의 마트로 가
하지만 여전히 수줍은 채로
날 써줄 수 있겠냐며 물었다
중년의 남자는
내 얼굴과 몸집 그리고 그 무언가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말했다
시급은 이천 원이야
그리고 배달도 해야 해
오토바이 타봤어? 아니면 알려줄게
남자를 뒤따라가며 마주한
문에 붙은 공고가 보인다
시급 3000원 0명 성실 근면하신 분
새벽이면 온갖 과일박스들이 들어찼다
포도나 사과가 들어올 때면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참 좋아하는데
상자들을 나르고
상품을 진열하고
배달을 다니고
술병들을 채웠다
한 달을 꼬박 일하면
삼십만 원 방학엔 육십만 원을 받았다
유독 힘들었던 날
집에 가서 먹으라며
정육점 아저씨는 고기를 건네줬다
밤 열두시에 퇴근을 하고
불 꺼진 거실에서 나보다 오래된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린다
맛있겠다
가게에서는 밥을 주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퇴근길이면 그제야 배고픈 걸 느끼고는 했다
고요한 집안에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린다
문이 열린다
시발 시끄럽게
죄송해요
아직 발간 고기를 주섬주섬 주워 담은 채
거실 한쪽에 누워 몸을 기댄다
처음으로 내 몸에 붙은
시급 이천 원짜리 삶이
어쩌면 퍽 적절하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