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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했다
게시물ID : freeboard_20305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논개.
추천 : 4
조회수 : 9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8/21 13:01:34

아니 어쩌면 모든 게 필요했다

내가 가진 건 별로 없었으니까

열다섯의 수줍음 많은 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이 없다는 건 때로 용기를 주기도 했나 보다

집 근처의 마트로 가

하지만 여전히 수줍은 채로

날 써줄 수 있겠냐며 물었다

중년의 남자는

내 얼굴과 몸집 그리고 그 무언가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말했다

시급은 이천 원이야

그리고 배달도 해야 해

오토바이 타봤어? 아니면 알려줄게

남자를 뒤따라가며 마주한

문에 붙은 공고가 보인다

시급 3000원 0명 성실 근면하신 분

새벽이면 온갖 과일박스들이 들어찼다

포도나 사과가 들어올 때면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참 좋아하는데

상자들을 나르고

상품을 진열하고

배달을 다니고

술병들을 채웠다

한 달을 꼬박 일하면

삼십만 원 방학엔 육십만 원을 받았다

유독 힘들었던 날

집에 가서 먹으라며

정육점 아저씨는 고기를 건네줬다

밤 열두시에 퇴근을 하고

불 꺼진 거실에서 나보다 오래된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린다

맛있겠다

가게에서는 밥을 주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퇴근길이면 그제야 배고픈 걸 느끼고는 했다

고요한 집안에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린다

문이 열린다

발 시끄럽게

죄송해요

아직 발간 고기를 주섬주섬 주워 담은 채

거실 한쪽에 누워 몸을 기댄다

처음으로 내 몸에 붙은

시급 이천 원짜리 삶이

어쩌면 퍽 적절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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