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오바마다 싶은 연설이었다. 그의 언어는 나를 공명시켰으며, 내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이 뜨겁게 환호하게 만들었다.
누가 더 옳은가? 카밀라 헤리스/오바마 진영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의 옳지않다고 여겨지는 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외면하고 배제한다.
이들은 틀린얘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패자를 철저히 외면하고 배제한다. 승자의 이야기를 하며, 누군든 승자가 될 수 있다며 승자들을 독려한다. 하지만 승자의 반대편에 쓸쓸히 앉아있는 패자의 편은 조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느끼는 모욕감도, 패배감도, 무력감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바마 케어는 이 시점에 승자들이 너그럽게 베푸는 일종의 시혜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시행한 정책이, 오히려 어려운 그들에게 더 많이 공격받으며 오바마가 느꼈던 배신감을 보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심리적 기전이다. 없던 선민의식도 생길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마더 테레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주어라 가르치던, 인류 중 가장 위대한 행적이 조명된 이를 근거로 당신은 덜 위대하다며 손가락질 해서는 안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틀린 이야기만 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고취시킨다.
누가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 것은 여전히 카밀라 헤리스 / 오바마 진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누구에게 있는가 묻는다면,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에게서 더 많이 보인다. 그는 소외되었다고 배제되었다고 여기는 레드넥의 입장을, 감정을 더 정확하고 통렬하게 대변하고있으니까.
엘리트주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썼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소위 좌파 엘리트 진영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차례에 걸쳐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진영의 대선전략이 이번에 갑작스레 바뀔 순 없다. 어떤 위대한 선지자적 관점이 세계에 실효성을 가져오기에 필요한 시간은 길고 실현될지 여부가 불확실 한 반면, 지금까지 효과를 발휘해 온 기존의 전략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을 두고 우리는 전략적이다 라는 표현을 쓴다.
상대적 소수인 레드넥, 소위 주류에서 완전히 소외된 자들은 적절한 분포로 미국 전역에 살고 있다. 미국의 대선시스템상 더 유리한 고지라는 이야기다. 주요 대도시에는 다수인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며 과밀하게 살고 있다. 미국 대선시스템상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그래도 현 시대 세계의 가장 강대국인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카밀라 헤리슨이길 소망한다. 적어도 이 혼란한 시기에 제일 앞에 선 국가가 먼저 엉망진창이면 그 후위는 보나마나다. 하지만 여전히 지난한 싸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