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 많은 이유들로
나를 변호할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어쩌면 마주하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비겁한 변명을 두른 채 눈을 감아 버린다
때리면 웅크리고
빼앗겨도 참는
수많은 반복을 겪으며
어쩌면 나는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 아직도
겁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된 자기 비하와
끊임없이 쑤셔대는 질병들이
한 번씩 차오를 때면
어느새 또 뒷걸음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테지
혼자 웅크린 채로
이겨내려 하지 않은 채
참다가 또 도망치겠지
난 내가 싫다
나를 증오한다
이런 나를 나라도 좋아하지 않으면
내 곁엔 아무도 없을까
가끔은 내가 불쌍하다가도
여전히 날 좋아하지 못한다
팔 년 전 가을이 떠오른다
또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