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한 번씩 엄마의 외가를 가면
들어서기가 무섭게
사촌누나들이 줄줄이 나와서는
나의 볼을 꼬집으며
너무 빨라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 깔깔대며 웃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왼손엔 첫째 누나 인지 오른손은 둘째 아님 셋째 누나 인지
그들의 손을 붙잡고 딸기밭 사이를 걸을 때면
기분이 좋아 껑충거리면서도
어딘지 모를 불안감에
누나들의 얼굴을 이따금씩 바라보았다
너무도 빨리 커버렸던 내게
누나들이라는 존재는 많은 의지와 위로가 되었던 걸까
봉숭아가 피는 계절이면
셋이서 나를 둘러싸고는 옹기종기 모여
봉숭아 잎을 찧고
손끝에 곱게 올려주며
내 표정을 살피면서
너무 아프지도 않게 하지만 풀어지지도 않게
하얀 조각으로 소중히 묶어주었다
발갛게 물든 손톱을 마주하며
서로의 소원을 말할 때
난 그저 누나들의 이름만 되니 일뿐이었다
그 해 겨울
둘째 은영이 누나는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유난히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넘어지면 자신이 더 아파하던 사람이었고
그날의 갑작스러운 방문도
소원을 말하던 한낱 어린애의 읊조림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티브이를 보고
밥을 먹고 별게 아니었지만
그 별것들이 결핍된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같이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밤이 되자 여지없이 부모님은 싸웠다
소중한 사람들이 싸우는 건 나름 익숙했지만
소중한 사람 앞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싸우는 건
어쩌면 어린 나에게 많은 변화를 줬던 것 같다
앞으로는 누나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그런 상황이 창피해서일까
아니면 남들은 다 아는 나만의 비밀인 줄 알았던 치부를 들켜서 일까
책상 밑에서 하염없이 울던 나를
괜찮다며 토닥여주던 누나를 보며
이 공간에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이 더 지난 세월 속에
난 아직도 책상 밑에 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7hjieun/2235853763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