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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재판에 관한 언론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와 당사자의 인권, 저널리즘의 역할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중차대하고도 예민한 사안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의 보도 경향과 관행을 보면, 상식적 관점에서 이상해 보이는 면이 있다. 알 권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사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며, 합리적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사람들은 저마다 유무죄에 관해 정반대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자기 믿음의 근거를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우리 언론에서 객관적 분석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과 같은 공적 인물들이 수사를 받고 있거나 기소되었을 경우, 이런 사안을 객관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범죄의 성립 요건과 그 근거에 관해 분석해 보면 되기 때문이다. 피의자 혹은 피고인에게 적용된 죄목이 있다면, 그 범죄에는 구성요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배임죄라면, 일단 피의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어야 하고, 임무를 배신했을 것, 경제적 손해에 관한 고의 등이 그것이다. 검찰이 혐의가 성립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고 증거가 있을 것이다. 언론은 그게 무엇인지 캐물으면 된다. 증거는 무엇이고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변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면 된다. 이렇게 하면 혐의의 성립 여부에 관해 나름의 합리적 근거를 통해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보도의 틀은 검찰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가 권력기관이 내놓은 주장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과정이다. 과연 혐의가 성립할 수 있는가, 왜 그런가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비판적 사고란 상대의 주장에 대해 정말로 그런지, 왜 그런지 합리적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으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흔히 자타가 공인하는 언론의 사명인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방송, 신문 보도의 틀은 이와 다르다. 혐의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나 프레임에 입각한 보도는 드물다. 대신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형식은 소위 공방 보도다. 전형적으로 지상파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런 보도들은 중립성을 의식한 탓인지 양측의 주장을 단순 나열한다. 하지만 소개된 주장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보도는 시청자의 궁금증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도의 품질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아서, 저런 주장들에 대해 도대체가 최소한의 의문이라는 걸 제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여서 답답함만 느낄 뿐이다. 주장들에 근거와 설득력이 부족한 경우 공방 보도는 그 점을 은폐하게 된다. 형식적 중립성이 실제로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불리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결과적으로 편파보도의 상투적 수법이 된다.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보도 행태는 혐의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들에 집중하는 보도들이다. 예를 들면 검찰에서 누가 이렇게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더라, 검찰이 이런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더라는 식의 보도들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 자체가 보도 가치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보도들에 비판적 관점과 문제의식이 누락된다면 결과적으로 이는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되고, 가장 나쁘게는 선동적 성격마저 띠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배임죄로 기소된 사람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면, 손실을 입히려는 고의성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범죄의 구성요건 중 이처럼 어느 한 가지에 관해 입증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다른 피의사실들에만 치중하는 보도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까? 수사 상황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유무죄 여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불리한 피의사실을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들이 유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어떤 구성요건이 입증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무죄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점을 무시한 채 일방이 흘리는 피의 사실에만 집중하는 보도는, 정파적 입장에 따른 편견과 증오심에 영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의도라면 우리 언론은 이 점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실 추구는 언론인에게 다른 어떤 명분들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형사 재판이라는 사안은 개인의 인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다른 어떤 사안보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사고를 통한 객관적 분석 보도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의 흔한 보도 행태는 객관적 분석에 거리를 두는 것들이다. 진실 추구를 멀리한 사회는 큰 대가를 치른다. 사람들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저마다의 정파적 입장에 따라 유무죄에 관한 강한 신념을 갖는다. 정치인은 이런 여론에 편승하여 적대감 조장에만 몰두하는 저급한 정치적 행태를 보이곤 한다. 객관적 분석 보도를 도외시한 업보는 언론인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돌아오고 있다.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언론이 먼저 끊어내기를 바란다.
출처 | https://blog.naver.com/senti-rationalist/2235926674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