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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13. 위기(5)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대의당 사무실이었다. 이번 예비검속건은 제대로 처리를 못했지만 그래도 조선내 부왜파들 중에서 제일 힘과,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자는 박충금이었다. 그리고 박가의 의견에 전가는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제거하는 일은 부왜파들이 세력을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었다ㅡ왜놈들이 항복을 하지 않은 지금 최대한 제거해야 했다.
“...... 그렇소. 이렇게 있을 수는 없소. 우왕좌왕하다가는 정말 큰 낭패를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오. 아무래도 나는 조센징놈들이 무슨 큰일을 꾸미는 것 같소. 경찰은 전혀 정보가 없소?”
전가의 생각을 들은 박가는 주먹을 부르쥐고 흥분을 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하야시는 기대할 게 없음이 증명됐고, 조선의 깡패들을 동원하는 것은 그놈들을 잡아다 족치는 일로 물 건너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잡으러 다닐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입니다, 의원님.”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냄새는 나는데 단서를 잡을 수가 없어. 중형이에게 들어봐도 그렇고, 부민관 폭탄테러도 그렇고, 분명히 냄새가 진동하는데......”
“의원님, 시일이 급박하니 예비검속은 무리고, 지금부터 형무소에 있는 놈들 만이라도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현재 형무소에 있는 놈들이야말로 타협을 모르는, 그중 악독한 놈들이 대다수 아니겠습니까? 그놈들 하나가 바깥에 있는 놈들보다 열 배는 더 위험한 놈들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놈들 숫자도 상당합니다. 그놈들이라도 확실하게 제거해야 됩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소?”
박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우리 동지들이 똘똘 뭉쳐서 압력을 넣어야지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왜놈들이야 그렇게 똥줄 탈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건너가 버리면 그만인데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지요. 의원님께서 앞장서시면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원님이 용단을 내려 주십시오!”
전가의 표정은 구세주라도 바라보는 듯했다.
“말은 바로 하시오! 나도 마찬가지로 본국으로 건너가면 그만이야!”
기분이 조금 상한 박가가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전가는 아차, 싶었다. 박가가 왜국에도 막강한 기반이 있음을 무시한 것처럼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포기한 박가였다. 기왕 안 팔리는 것, 조선놈들에게 재산도 다 빼앗겼다고 거짓선전을 하므로써 투쟁경력에 하나를 더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아직 왜국으로 건너갈 생각은 없었다. 맨 마지막으로 건너가야 했다. 왜국 국민들에게 최후까지 분투했음을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예예. 그러니 의원님이 앞장서 저희들을 구해 주십사, 그 말이지요. 의리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의원님이 아니십니까.”
전가는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쌍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오히려 네놈이 나보다 더 답답한 것 아닌가. 까딱하면 네놈이 조선에서 만들어 둔 재산이 다 날아갈 판이 아니냐 말이야. 아무리 네놈이 왜국에 많이 챙겨놨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이면 그리 만만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만약에 잘못되면 매를 맞아도 네놈은 나보다 더 맞을걸!
“그렇소. 나, 이 쓰다 이치로가 동지들을 나 몰라라 할 사람이 아니지. 그랬다면 오늘날의 나, 쓰다 이치로도 없었을 것이오. 빨리 동지들에게 연락하시오. 당장 총독부로 들어갑시다. 그리고 지금 바깥에 있는 놈들도 못 잡아넣을 것이 없소. 지금이라도 우리 대의당 동지들과 경찰을 동원해서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잡아넣도록 해야겠소.”
전가의 빈말에 기분이 좋아진 박가가 호기롭게 내뱉았다.
두어 시간 후, 박가를 앞장세운 골수 부왜분자 20여 명은 총독부로 들어섰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무리를 보고 엔도는 의아했다.
“의원님께서 웬일이십니까?”
엔도에게는 박가만 보였다.
“어떻게 할 작정이오.”
“뭐를 말씀입니까?”
“조선 말이오?”
박가는 눈꼬리를 치켜세웠고 엔도는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항복을 하면 아니, 전쟁이 끝나면 조선을 어떻게 하겠느냐 말이오?”
이번에는 언성까지 높였다.
“아, 그거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대본영에서는 본토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일억옥쇄를 각오하고 본토결전을 해야 한다는 군부와 그만 끝내자는 수상・외부대신과, 양측의 의견을 따르는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누구도 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엔도는 바른대로 말한다면 귀찮아질 것이 분명하므로 대충 넘기려 하고 있었다.
“그게 그거 아니오. 본토결전에 승리한다고 해도 본토를 지킨다는 것이지 조선까지 지킨다는 건 아니지 않소?”
박가는 눈까지 부라렸다. 불량기가 가득한 것이 제대로 된 박가로 돌아온 것이었다. 어마 뜨거라, 의회가 좋기는 좋구나. 무식한 깡패새끼가 의회물 몇 년에 저렇게 똑똑해져 버렸나. 엔도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말씀하시고 싶은 게 무엇인지요?”
엔도가 공손히 물었다. 싸워 봤자 입만 더럽힐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용해 먹기는 했지만 박가를 인간으로 보지 않은지 오래였다. 자존심이란 인간 같은 인간에게 내세우는 것이지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에게는 내세울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엔도였다. 그러니 굽신거리든 가랑이 사이로 기든 이미 자존심 문제가 아닌 것이었다. 박가만 인간 같지 않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의 부왜분자들은 모두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었다. 덜 만만하고, 더 만만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저희 나라를 압제하는 나라에, 저 혼자만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부하고 설치는 쓸개 빠진 자들이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박가 같은 자들은 그래도 나았다. 무식하므로. 그러나 좀 배운 조선의 부왜파들은 차마 봐줄 수가 없었다. 만약 왜국과 조선이 처지가 바뀐다해도 왜국에는 저런 인간 같잖은 놈들은 하나도 없을 것임을 확신하는 엔도였다.
“지금 형무소에 있는 불온한 놈들부터 모조리 처치하시오, 당장! 그놈들이 풀려나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소. 우리도 우리지만 내지인들은 더 곤란을 겪게 될 거요. 우리야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면 되지만 내지인들은 말부터 표시가 나잖소. 대본영이 항복을 하고 그놈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현재의 수송능력으로 몇 사람이나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같소?”
박가는 왜인들이 더 곤란해진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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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어도 없는데 게재를 방해하는군요, 오유가.
올렸다가 지웠다가 한 것은 그리 된 것이니 혜량하시기 바랍니더.
올라가지 않는 부분은 댓글로 올리겠습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