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대에게 드리는 꿈(13-6)
게시물ID : lovestory_957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66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0/24 10:45:48
옵션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3. 위기(6)



 “지금 당장은 좀......”

 “총감은 목숨이 여러 개요? 총감의 목숨도 달린 문제란 말이오!”

 당장이라도 박가의 주먹이 탁자를 내려칠 기세였다. 엔도는 당황했다. 일리 있는 말로 계속해서 몰아붙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경무국장과 조선군사령관, 유관책임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릴테니 당장 조치를 취하시오!”

 엔도가 황황히 방을 나가자 박가는 만면에 승리자의 웃음을 띠고 고개를 젖힌 채 소파에 등을 묻었다. 박가는 자신에게 적이 만족했다. 조선의 2인자인 정무총감을 고양이가 쥐 몰듯이 몰아쳤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찬사가 터져나왔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의원님!”

 “역시 우리가 믿을 분은 의원님밖에 없으십니다.”

 “의원님이 계시는 한은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왜놈들이 물러가더라도 우리는 의원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박가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 한마디 던졌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지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 테니 아무 염려들 마시오.”

 엔도가 돌아왔다.

 “모레는 돼야 되겠습니다.”

 “한 시가 급박한데 너무 늦는 것 아니오?”

 박가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제 상하가 완전히 바뀐 형상이었다.

 “부처별로 시급한 과제가 있어서 그 이전에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놈들을 처치하는 것은 그렇게 하더라도 잡아들이는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하시오. 그거야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지를 않소?”

 “그것도 인력이 문제라...... 하여간 알겠습니다. 의원님 말씀대로 하지요.”

 엔도는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총독부는 비밀리에 왜인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을 하기에도 경찰력이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빨리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당면한 총독부의 과제였다. 그렇지만 박가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차질 없도록 철저를 기하시오!”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고, 박가 일당은 총감실을 나섰다.

 곧바로 전국의 경찰서에 불령선인을 검속하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경무국은 인원을 쪼개 독립운동 전력이 있는 사람들의 검거에 나섰다.

 그날 밤 영시를 기해 소련은 대왜선전포고를 하고 소・중 국경과 두만강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독일군을 무찌른 기세를 앞세운 소련군 앞에서 왜군은 추풍낙엽이었다. 9일 아침에 소련군은 벌써 두만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조선군사령부는 대본영의 명령에 따라 최소 병력만 남기고 소련군과의 접전 지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 하에 종전을 맞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왜왕은 항복에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이제 소련마저 공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히로시마로 간 조사단의 결론이 ‘원자폭탄’이 확실하다는 것이었고, 이처럼 가공할 무기를 미국이 만들었다면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다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더구나 소련과도 싸워야 되는 마당에 본토결전을 하더라도 유리한 국면은커녕 더 처참한 결과만 낳게 될 것이었다. 동경에 원자폭탄을 쏟아붓는다면 어쩔 것인가. 지하 요새에 들어가 숨는다 해도 냄새에도 사람이 죽고, 그 냄새가 수천 년을 가리라는 폭탄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자신도 꼼짝없이 죽게 될까 두려웠다.

 왜왕의 뜻을 전달받은 수상 스즈키는 각의를 열었으나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았다. 요나이 해군대신과 도고 외상은 왕의 국법상의 지위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나미 육군대신은 그 조건 외에 점령은 최소한의 범위에 최소한의 병력으로 단기간에 할 것과 무장해제와 전범처리는 자국에 맡길 것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아나미는 그 조건들은 국체를 보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으로서 소련은 믿지 못할 나라고, 미국은 비인도적인 나라여서 이런 나라들에게 아무런 보장도 없이 왕실을 맡기는 것은 절대로 반대라는 것이었다. 도고는 그러다가 강화협상이 결렬이라도 되면 어쩌느냐고 물었고, 아나미는 그러면 최후의 일전을 벌여야 된다고 주장했다. 승리가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패배한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회의 중인 정오쯤에 나가사키에도 원자탄이 투하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아나미는 굴하지 말고 싸우자고 주장했다. 피곤한 회의는 계속되고 있었다.

 며칠 전에 경성으로 온 임종일도 군사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숙의하고 있었다.

 “소련군이 두만강을 건넜답니다.”

 좀 늦게 나타난 마동주의 말에 모두들 놀라고 있었다. 왜군이 그렇게 형편없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이틀 전에 입국한 서태문이 정색을 했다.

 “아니, 왜놈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진단 말이오?”

 “소련군을 막기 위해서 전진배치했던 나남19사단은 전멸했다고 합니다.”

 “우리로 볼 때 좋은 거요, 나쁜 거요?”

 “좋고도 나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선군사령부에서도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조리 출병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계획하는 일은 한결 쉬워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소련으로 하여금 물러가 달라고 요청을 해야 됩니다. 현실적으로 소련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기는 하나 소련이 응해 줄지 장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한숨을 내쉬는 마동주였다.

 “그 문제는 마동지의 계획대로 하면 되겠소이다. 소련도 웬만하면 받아들이지 않겠소. 마무리는 임정이 하면 될 것 같소.”

 마동주의 계획에 여운형이 덧붙였다.

 백상열이 민상희를 비롯한 세 사람이 행방불명이라는 소식을 갖고 들어왔다. 며칠째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걱정으로 표정이 굳어진 채 마동주나 강성종이 무슨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둘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완전히 포기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

 강성종이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혹시 마동지는 뭐 짚이는 거라도 없습니까?”

 “글쎄요. 저도 뵌 지가 좀 됐는데......”

 마동주는 오히려 자기가 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강성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왜놈들에게 잡히신 건 아닙니까?”

 “어떤 분들인데 왜놈들에게 잡히시겠습니까?”

 마동주가 손사래를 쳤다. 여운형은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리려 헛기침을 했다.

 “어허 그것 참 모두 무사하셔야 될 텐데...... 그런데 그 동지들이 없으면 계획에 차질이 많소?”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저희들이 지금부터 정보망을 가동해서 세 분을 찾아보겠습니다.”

 강성종이 마동주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한편, 마동주를 따라 청계천으로 잠입한 민상희를 비롯한 셋은 어두컴컴한 움막 안에서 무더위와 씨름하고 있었다. 문을 다 열어젖혀도 더운 날씨에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움막 안은 감옥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에게 부딪힐 만큼 좁은데다 문도 닫은 채였다. 그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비오듯이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기 바빴다.

 “선생님, 차라리 감옥살이하는 게 훨씬 나았던 것 같은데요.”

 김만길이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감옥은 감옥 나름의 자유가 있었다. 흠씬 두들겨 맞는 것으로 끝나곤 하지만 간수들과 싸울 자유도 있었고, 눈치껏 통방하는 자유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운동할 자유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야기도 크게 해서는 안 됐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늘 옮겨다니며 활동해 오기를 벌써 20년인 김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김동지가 특히 고통스러울 것이오. 허나 이것도 투쟁이라고 생각하고 힘들지만 참아봅시다.”

 민이 안타까운 눈길로 둘을 바라봤다.

 “아니, 김동지는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그러는 거요. 여기서 누워만 있으면 조국해방으로 가는 열차에 무임승차하는 것인데.”

 박도근의 농에 민과 김은 소리없이 웃었다. 찡그린 웃음이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