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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5일, 날씨: 눈발 날림
이른 아침에 한 장의 사진을 봤어.
눈을 맞으며 앉아있는 어떤 사람 사진이었지. 여성이었고, 젊어 보였어.
등과 어깨에 두른 은박지 위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었고, 눈발도 세차게 휘날렸어.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고, 손에는 작은 봉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어.
알고 보니 한남동에서 밤을 새우며,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의 체포’를 외치는 젊은 여성이었어.
이들은 강바람이 부는 아스팔트 위에서, 눈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작은 자유를 위해,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에 맞서고 있더라.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멍해졌어.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현장으로 갔는데, 추울까 봐 이것저것 겹쳐 입은 내 모습이 왠지 한심해 보이기도 했어.
한강진역에 도착했을 때, 날카로운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어. 그리고 노인들의 수가 부쩍 많아졌지.
‘아, 태극기 집회 쪽이구나’ 싶었어.
둘러보니 태극기와 성조기를 파는 사람, 우비를 걸친 허리 굽은 노인들,
반쯤 취한 듯한 선글라스를 낀 할아버지, 알록달록한 두꺼운 스웨터를 입은 아주머니 등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어.
그 사람들 입에서는 “이재명 구속”, “찢재명은 죽어라!”, “탄핵 무효!”, “빨갱이들은 물러나라!” 같은
섬뜩한 구호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어.
언덕길에서 아래쪽을 향해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얼추 천여 명은 넘어 보이더라(내가 본 쪽만으로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단에서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낯익었는데, 전광훈 목사였어.
그는 강압적인 어조로 “무조건 들어!”, “빨갱이들을 다 죽여야 돼!”라고 선동했고, 노인들과 몇몇 젊은이들은 열광했어.
솔직히 좀 무서웠어. 나에게 위해를 가할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광적인 분위기 자체가 주는 공포였어.
그래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어.
태극기 집회 쪽을 벗어나자 경찰들이 많이 보였어. “아, 여기가 경계구나!” 하고 생각했지.
한남대교 방향으로 100여 미터쯤 내려갔더니 육교가 보이더라.
대통령 관저가 있는 쪽이 길 반대편이라 육교를 건너야 했어.
육교 위에서 내려다보니, 뉴스에 자주 나오던 윤석열이 머무른다는 그 방향은 경찰 차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어.
길을 건너 좀 더 내려오니,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일단 사람들이 젊었고, 옷차림도 밝은색이 많았어.
들려오는 소리도 찢어질 듯한 스피커 소리가 아니라, 아직 미숙하지만 열정 어린 목소리였지.
좀 서둘러 도착해서인지, 사람들이 없었어.(정식 집회는 오후 2시 쯤, 난 12시 쯤 도착했어)
사람들은 십여 명씩 무리지어 마이크 없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어. 선창하는 친구도 20대 초반으로 보였어.
“윤석열 구속”, “윤석열 탄핵” 같은 구호를 몇 마디 따라 외치다 보니, 주위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밤을 새운 듯 눈을 감은 채 은박지를 두르고 구호를 따라 부르는 사람,
친구인지 둘이 꼭 붙어 이불을 함께 두르고 있는 사람,
비닐과 은박지를 몸에 두른 체구가 작은 소녀(내가 100kg이 훌쩍 넘어서 더 작아 보였는지도 모르지),
눈에 젖은 팻말을 들고 누구보다 크게 외치는 사람,
그리고 추운 날씨에도 커피 캐리어를 들고 다니며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들까지…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어.
정식 집회 시간이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구호 소리도 점차 커졌어.
서로 웃고 격려하면서 함께 외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이상하게도 ‘우리가 반드시 이길 거야!’ 하는 확신이 들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날 여기로 이끌게 해준,
청춘들아 고마워!
40여 년 만에 써보는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