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인의 어깨위에 서있는 작은 난쟁이다(We are like dwarfs sitt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 아이작 뉴턴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뉴턴의 말이다. ‘거인의 어깨위에 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라고 잘 알려진 이 문구는 경쟁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여 있었던 구절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이유는 비교적 간단 한 것 같다. 거인의 어깨위에 서보기는커녕, 거인을 타고 올라가는 것조차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잘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많을 수 있어서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학자로써 자신이 선인들의 지혜위에 올라서 있음을 잊지 말고 겸손해라’ 라는 문구이다. 어릴 적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다고 믿었을 때, 떨어지는 사과를 보아 우연히 발견한 그가 천재로 느껴졌을 때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의 천재성은 우연의 발견으로 세상을 뒤집은게 아니라 그동안 쌓여왔던 지식들을 바탕으로 고전물리학을 정리해낸데 의의를 두는 것이다. 또다른 천재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이라고 다를 것 같은가? 그가 정규과정을 평범하게 거쳐 오지 못했을지언정, 어릴 적부터 습득한 지식들의 내용은 모두 선대의 천재들과 범재들의 결정체들이었다.
1600년대를 거쳐 1800년대로 들어오면서 근대 학문은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과학을 필두로 철학, 사회과학 더 나아가 신학에 대한 토론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그 시간의 밑바탕은 선인들이 남긴 지식들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업적들이다. 학문의 다양성과 깊음은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는데, 지금의 연구자들이 웃을만한 1900년대 이전의 연구(방법론을 포함하여)들이 결코 무의미 하지 않다. 과거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현대의 업적들이 과거의 실수와 발견이 없었다면 애초에 존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 말이다. 뿌리 없는 나무 없듯, 연구 배경이 없는 발견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어느 사이비 연구소장이 ‘관심 있는 것만으로 연구할 수 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것은, 수천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학문의 위용은 일반인들은 범접조차 하기 힘든 금자탑이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데, 2016년 현재를 사는 사람중에서 철학, 과학, 사회과학의 배경지식 수준이 1500년대 이전인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고대 중세시대 수준에서 머무는 사람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학자는 학자로써 특수한 계급이다. 특권층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특별한 권리는 아주 색다를 것은 없다. 단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은-신이 주사위를 굴려 쥐어준-지식의 금자탑에 몸을 담을 수 있는 권리. 또 그들이 권리의 대가로 지는 의무는 과거 선배들의 지식을 자신에게 담고, 그것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줘야하는 것이다.
연구를 하는데 자격이 필요하냐고? 그렇다. 필요하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학자라는 특수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나아가 학자로써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져야하는 의무를 충실이 숙지하기만 하면 된다. 현대에서 가장 간단하게(반대로 가장 어렵기도 하다) 자격을 받기위해 거치는 과정이 지식의 금자탑-대학-에서 받는 석사(碩士)학위과정이다.
어느 학문분야이던 그 분야의 대가로써 거쳐가야 하는 관문. 또 학자로써 자신이 져야하는 책임감을 기르는 과정. 나아가 먼저 이 과정을 거쳐 간 선배들에게 인정을 받는 축하식. 학자로써 첫 발을 내딛는, 가장 닿기 어렵지만, 고작 시작에 불과한 과정으로서 자격이 석사이다.
거인을 딛고 올라가려는 자여, 거인 앞에 겸손하라. 너 또한 언젠가 그의 일부가 될 것이니...
난쟁이가 코앞의 현실의 무게에 짓눌릴 지라도, 거인은 언제나 그곳에 서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