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를 하지 않고 타격만 전문적으로 하는 지명타자는 수비와 공격을 겸비해야 하는 야구에서는 별난 포지션이다. 수비를 하지 않고 공격만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격에 대한 요구는 일반적인 야수들에 대한 공격의 요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준이 높을 뿐 더러 자신의 공격상황을 제외하고는 덕아웃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기에 컨디션 조절이 힘든 것이 바로 지명타자다.
겉으로 보기에 쉽고 편해보이지만 34년째를 맞이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지명타자로서 족적을 남긴 선수를 찾기 힘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명타자 중에서도 특히 드문 것이 우타 지명타자들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을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마해영, 이호준, 홍성흔 정도가 우타 지명타자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중에서도 FA우등생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는 이호준, 홍성흔 정도다. (마해영의 경우 통산 성적에서는 다른 선수들보다 뒤질 것이 없으나(0.294-260홈런-1,003타점) 은퇴전 4년간의 FA시절에는 0.249-20홈런-99타점으로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한때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란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진: NC 다이노스)
이호준은 프로데뷔에는 투수였지만 1군 경험이라고는 1994년 8경기에 등판해서 12.1이닝 10.22의 평균자책점이 전부였을 정도로 빛을 보지 못한 채 타자로 전향해 꾸준한 모습을 보이면서 2차 FA까지 따냈고 3차 FA까지 바라보고 있다.
반면 홍성흔은 경희대 재학시절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으며 두산 입단한 후 바로 주전포수로서 발돋움했고 이후 첫 FA자격을 얻기전까지 계속 두산의 안방을 지킨, 포지션 플레이어로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보냈던 선수로서 FA신분이 되면서 선택한 지명타자로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둘은 단순히 성적이 좋다는 것은 물론, 소속팀에서 덕아웃 리더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팀의 구심점이 되는 역할을 200% 수행하고 있으며 2015년 시즌 각각 40세와 39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속팀의 주전라인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타 지명타자의 양대 산맥이 우뚝 서 있는 가운데 새로운 우타 지명타자가 이들의 뒤를 이어 받기 위해 2014년 시즌 고개를 서서히 들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자이언츠의 최준석이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통산 성적 비교>
이호준 : 1976년생 18시즌 / 0.280-285홈런-1,032타점
홍성흔 : 1977년생 16시즌 / 0.304-201홈런-1,069타점
최준석 : 1983년생 12시즌 / 0.271-133홈런-596타점
프로입단 당시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정작 프로의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선 최준석은 이호준, 홍성흔에 비해 7년이나 어린(!) 탓에 누적 스탯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FA계약 후의 성적을 두고 본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최준석은 첫 FA자격을 얻기 후 첫시즌이었던 2014년 시즌 0.286의 타율에 23홈런 90타점을 거뒀는데 이는 FA 첫 시즌에 이호준이 8경기 0.200-0홈런-2타점을 기록하면서 고개를 떨궜던 것에 비할 수 없는 좋은 성적이었다. FA 첫 시즌부터 성공적이었던 홍성흔의 성적과(119경기 0.371-16홈런-64타점)비교해도 타율을 제외하고는 뒤지지 않는 성적이다.
<FA계약 이후 성적>
이호준 6시즌 : 99홈런-408타점 / 연평균 : 16.5홈런-68타점
홍성흔 6시즌 : 94홈런-475타점 / 연평균 : 15.7홈런-79.2타점
최준석 1시즌 : 23홈런-90타점
비록 첫 시즌이긴 하지만 이호준, 홍성흔이라는 우타 지명타자의 양대산맥에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활약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앞으로 남은 계약기간 동안의 활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 그 누구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준석이 우타 지명타자의 계보를 이어나갈 영순위 후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박상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