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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철학)우상에 대해.
게시물ID : phil_160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ishCutlet
추천 : 11
조회수 : 900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7/11/25 17:32:55
사람들이 흔히 똑똑하다며, 훌륭하다며 추켜세우는 사람은
좋은 답을 찾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답은 이미 그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다.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이미 정해 놓은 답을 잘 설명해주고 강화해 주는 사람이다.

그 답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들 안에서 그 답은 옳은 답으로 정해져 있어서,
그 답이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강화하고 승리로 이끌어줄 사람을 우상화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은 짓밟아버리길 원한다.
더 나은 대안, 올바른 정답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다른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보수 논객"으로 인기를 끌어온 전원책 변호사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10년 전 쯤 어떤 토론 방송에서 군가산점 제도를 옹호하는 패널로 등장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 전원책 변호사가 큰 호응을 받았던 말 중 하나는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것.
이것은 전원책 변호사의 입장과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다.

가고 싶은 군대가 있는지 없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군대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군인들에게 보상하는 다른 대안이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군가산점 제도가 극소수의 사람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상의 방법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기회의 균등이란 면에서 형평에 어긋나는 제도라는 점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군복부는 강제로 이행했으니, 군가산점까지 빼앗기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 속에선 군가산점 제도는 옳은 것으로, 그것을 반대한 것은 틀린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전원책 변호사가 논객으로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의 논거와 논증이 빈틈없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을 대신해 싸워줄 목소리 크고 말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유아인이 트페미에게 일침을 날린 것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의 말은 어디 흠잡을 곳 없는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유아인이 상대한 것이 메갈인지 트페미인지 여부를 떠나서,
누구든 유아인의 삶에 이렇다 저렇다 간섭할 권리는 없다.
'내 인생 말고, 너희 인생을 살아라'라는 일침은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말이다.
더군다나 한남 운운하며 유아인을 비난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오유에서도 유아인의 일침이 크게 화제가 된 가운데,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이상해 보이는 댓글을 발견했다.
정영진.png

나는 방송인으로서 정영진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사실 까칠 남녀라는 방송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남자와 여자 역할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한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임신 등 생물학적 역할이라는 아주 제한적이고 협소한 맥락을 벗어나면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이번에 유아인이 휘말린 논쟁과는 전혀 관계 없는 주장이다.
단지 트페미와 싸웠다는 이유로, 적과 아군으로 피아식별이 된 것이다.
사실, 유아인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논쟁에서도 상대방이 유아인에 대해 '페미니스트 코스프레 한다'고 비난할 정도다.
유아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모두가 평등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도 자신의 특질로 소외되거나 핍박받거나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
'엄연히 남자와 여자 역할이 따로 존재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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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유아인이 크게 화제가 되고 속시원한 일침을 날렸다고 칭송을 듣는것에 대해서,
약간은 의아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의 주장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이유로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제 유아인의 말들은 결론적으로 구구절절이 옳은 말들이다.
나 역시, 그의 결론이 나의 결론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일침을 속시원히 여기는 것이 그의 논거가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입장상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유명 인사가,
자신들이 욕하고 싶었던 상대에게 면박을 줬기 때문에 속시원히 여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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