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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의 장마
게시물ID : phil_163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메타세
추천 : 1
조회수 : 7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05 12:39:15
옛날에 티브이 문학관이나 한국 명화 같이 재미없는 영화 보여주는 시간에 간혹 나왔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공비 소탕하다가 죽은 아들 때문에 빨갱이를 저주하는 할머니가 공비 아들을 둔 사돈을 원망하는데(두 할머니는 한 집에 살고 있음), 결국 공비 소탕 작전으로 인해 공비인 아들이 돌아오기로 한 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음. 그때 마침 집에 구렁이가 들어오니 사돈 할머니는 구렁이가 죽은 아들이 돌아온 거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제 기억에도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음. 구렁이에게 말 거는 게 할머니인지 사돈 할머니인지는 잘 모르겠음.

인터넷 검색해보면 누군가 이 영화에 대해 '논리적 감정적으로 합의 볼 수 없는 이념 대립을 민속 신앙인 무속 차원에서 화해를 시도함.' 이라고 간단히 줄여 소개합니다. 

이 영화는 79년 엄혹한 시절에 그나마 검열을 피해간 영화임. 당시에는 반공 영화의 껍데기를 쓰고 있었던 거 같음.

상영 시기는 한국 전쟁이 끝난 지 26년 후인데, 26년은 나이든 사람이 보기엔 그렇게 긴 세월이 아님. 



점의 존재와 부재 그리고 그 존재를 어떻게 여기는 가는 한 인간의 정체성과 거듭남의 문제와 유사하다고 생각함.

"점이 없는 인간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점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아멘) 
 
점을 가졌던 당사자가 자기 정체성을 과거와 다른 인간으로 여기기로 했다면, 사실 차원의 논란도 해소되기 쉽지 않음. 점처럼 근거가 명백한 것은 크게 논란 될 바도 없지만 과거에 저지른 행위나 신념 같은 것은 드러나지도 않음. 
이런 게 얼마나 많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논란 거리가 안되는 경우도 있음. 
어떤 문제를 정체성 문제로 환원시키게 되면 분쟁은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면 해소되지 않음. 
우리는 그래서 습관적으로 재난 상황이 닥치면 정체성이 다른 집단을 제물로 삼으려 함. 

이런 종류의 문제에 있어서 사실 차원에서 이해가 상충한다면 상대의 얼굴에 근거를 들이밀어서, 갈등을 통해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함.

갈등을 통해 관계 유지와 서로의 존재 인정 간에 저울질을 하게 될 거임. 우리는 이를 통해 뭔가를 얻고 또 잃어버리게 됨.

점 그 자체는 일반적으로 존재 자체를 결정하는 특징, 근거는 아니지만, 만일 점이 타인에 의해 파악되는 정체성의 근거라면 점의 가치는 달라질 거임. (뭔가 막장 드라마 같은 느낌임) 




점 이야기는 갈등과 갈등을 빚게 한 정체성 문제의 보편적 사례라고 생각함. 크게는 친일파에서 시작하여 남북 대립과 남한 내부에서의 기독교의 지위와 같은 역사적인 소재에서부터 작게는 한 개인의 개인사 속에서도 등장하는.  

누구나 인생에서 어느 시절에 그런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함. 

작가로서는 탐나는 이야기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거임.

'발가락이 닮았다'는 딱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같아서 너무 간단함. 그래서 재미가 없음. 점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음.
('발가락이 닮았다'는 주장은 아내의 외도와 자신이 고자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임. 요즘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님은 고자가 맞고,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음. 고자가 아님을 우기고 싶은 존재 자체의 발버둥을 조용히 잠재울 수 있지만, 우리는 굳이 그러지 않음. ) 

비슷한 이야기로 소위 '하나님이 주신 아이임은 때려 죽여도 틀림없습니다.' 가  있음. 이런 경우는 남편이 아내와 목사의 발버둥을 제압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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