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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비로 나온 아버지의 노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_김성범)
게시물ID : boast_169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냥이멍뭉
추천 : 1
조회수 : 5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07 16:56:30


감정이 앞서 주절주절



어린시절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보다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했었다.

표현하는 것에 서툰 아버지였지만

항상 일이 끝나시면 집에와 가족들과 함께 밥을 드셨다.

내가 걸음마를 때기 시작하고부터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미술관도 가고 공연도 보러갔다.

또 자주 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동요를 불러줬다.

그리고 초등학교때도 잠들기전에 동화책을 읽어 주곤 하셨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엄하기도 하셨다.

내가 착한일과 나쁜일을 구분 할 정도의 나이 약 7살 8살 부터 회초리를 드셨고

감정적으로 대하시는게 아닌 담담하게 나의 종아리를 때리곤 하셨다.

얇은 다리에 파란멍이 들어 아버지가 미웠다.

어린시절부터 독했던 나는 맞으면서도 절대 울지 않았지만

약을 발라주시거나 목욕하면서 많이 아프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는 아버지의 말에 펑펑 울곤 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나는 나름 정직하게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를 뽈뽈거리며 따라다닌 탓에

엄청 뛰어나진 않지만 교내 백일장이나 그림대회에서 상을 타곤했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아빠 흉내를 내며 기타를 배웠다.

아버지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 이름으로 출판된 동화책들을 몇번이고 읽었다.

아버지가 작곡한 노래를 몇번이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먹어가고 아버지와 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질적인 것보다 본질 적인 것 그리고 문학과 예술을 추구하시던 아버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실력은 돈을 벌기에는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한 나.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셨던 아버지는 나를 못마땅해 했고

나는 돈을 너무 멀리하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안 갔다. 

자연스럽게 아버지 책이 새로 나와도 읽어보지 않았고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나의 재능을 쓰고 다른 직업보다는 조금 더 남는 시간을 활용해 나의 재능을 갈고 닦기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5시에 퇴근하는 것에 만족하고 흔히 말하는 철밥통이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군복무를 시작했다. 물론 사회복무요원이라 집에서 나가있던 시간은 약 한달이었다.

슬프고 아쉽고 그런 생각도 없었다 고작 한달이니까.

하지만 집에서는 혹시나 내가 힘들까 염려하여 매일 편지를 보내왔다.

거의 어머니의 편지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아버지가 보낸 편지였다.


사실 정확히 기억도 안난다.

하지만 내 기억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 라는 표현을 들었다.

편지에는 '쑥스러워 못한 말이지만, 아들 사랑한다.'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를 생각하며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고 하셨다.


최근에 아버지와 또 여러가지 문제로 골이 깊어졌다.

그러던 오늘 엄마가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울컥 눈물이 났다.

이 노래 인것 같다.


그냥 아빠 노래 뮤비로 나왔다고 자랑하면 끝인데 괜히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다. 

 

출처 https://youtu.be/hC-vywu70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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