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MBC 뉴스에서 광주에 있는 사회복지단체가 대구 시민들을 위하여 마스크를 만들어 보낸다는 소식, 의료진이 부족하다니까 광주, 전남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간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먼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얘기하려니 나의 출신부터 밝혀야겠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부모님은 경남 거창 출신의 경상도 토박이셨다. 서울서 60년을 사셨어도 “이를 우야꼬”라는 어머니의 사투리를 듣고 자란 사람이다. 거기다 가장 보수적인 교단 소속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3대째 모태 신앙인이다.
군대에서 병장 최고참이 경상도 출신일 때와 전라도 출신일 때 아래 것들이 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들이 단체 회식만 하면 술에 취해 저지르는 폭력과 싸움을 보면서, 누굴 탓할 것도 없이 두 지방 모두 격하게 감정적이고 상당히 못돼 처먹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느꼈었다. 나야 서울 출신 하사였기에 간섭 받지 않고 관망만 했지만 말이다.
나의 편견이 완전히 깨진 것은 미국서 공부를 마치고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다. 군대시절 전두환이 전군에 배포한 김대중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고 빨갱이라는 안보교육 책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다니! 이건 뭐지? 그때부터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지방색을 조장하는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에 살면서 종교적인 편협함과 우리만 옳다는 보수적 색채는 지워졌지만, 정치적인 균형 감각은 여전히 부족했던 거다. 그러고 나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 또 그렇게 허무하게 보낸 그 분은 내 생애 최고의 인간이면서 가장 쓰라린 손실이고 아픔이 되고 만다. (그 분만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대구 신천지에서 코로나 사태가 확산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광주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경상도 사람들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을까? 교만하고 권력욕에 찌든 일부 경상도주의자들의 평소 언행으로 유추한다면, “광주사태 일으킨 빨갱이들이 천벌을 받는구나,” “전라도를 봉쇄하고 폐쇄시키자,” “대구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을 추방하자”는 말이 돌지 않았을까? 조갑제 같은 인간은 거론하지 않더라도, 바로 한 달 전에 광주 땅을 밟고 했던 전광훈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니 말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다 빨갱이다.” 이 말에 발끈 조차 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광주 사람들의 여유를 생각해본다.
내가 겪어본 호남사람들은 그렇게 점잖고 온순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가 없다.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그처럼 억울하게 당하고 온갖 비난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38년 동안 나서지 않고 쉬쉬하고 살았던 정말 점잖은 사람들. 80년 5.18 이후 2개월 만에 입대한 나의 하사관학교 동기들 중 절반은 광주와 목포 병력이었다. 그들은 6개월간 동거 동락하는 훈련기간 동안 바로 몇 개월 전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나에게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그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런 아픔을 안고 40년 가까이 침묵하고 지낸 사람들.
이번 대구 신천지 코로나 사태를 접한 광주의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자 기꺼이 행하는 봉사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번 기회에 대구 경북은 권력욕과 교만에 쪄든 지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좀 더 겸손해지고 좁은 지역의 틀을 뛰어넘어 국가를 위해 제대로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물론 나는 출신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고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이 내용은 정말 오랫동안 하고 싶은 말이었다. 대구경북 뿐 아니라, 지금 나라가 망하라고 발악을 하는 전국에 퍼져있는 사람들은 사악한 정치꾼들과 쓰레기 언론이 조장하는 가짜뉴스의 장단에 춤을 춘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정부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데 왜 그게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