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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고시원화재 뉴스를 보고..
게시물ID : sisa_232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을즐..
추천 : 10
조회수 : 3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6/07/22 06:15:32
그저께.. 신천의 고시원에서 불이나서 많은 생명을 앗아간 그날,
전 그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저녁나절 회사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고향친구들과 가족의 전화를 받고서야 대충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죠.

저도 고향 대구를 등지고 서울에 올라와 학업과 돈벌이를 위해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고 있거든요.
마침 강남 역삼쪽에 있는 고시원에 살고 있어서 고향친구들과 가족들이 걱정이 가득찬 안부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땐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안썼죠.
하지만 밤새 술을 마시고 놀다 새벽녘 출근해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기전에
네이버 뉴스를 뒤적여보다 자세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참 입맛이 씁쓸해지더군요.

무엇보다, 고시원에 살 정도면 상당히 절박하고,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열심히 살려던
희생자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분들과 유가족 분들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간만에 특종거리 잡았다고 들떠서 날뛰는 기사들과 그 아래 줄줄이 달린 리플들을 보면서
정말로 심기가 불편해지고, 뭔가 여러가지 복잡한 심정들이 들더군요.

심지어 어느 기사에선 지어낼 말이 없으니 희생이 커진 원인이 '방음시설'에 있다고까지 하더군요.
하아.. 이 기자분.. 고시원생활 같은 힘든 생활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분 같단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열악한 고시원들은 방과 방 사이 칸막이가 상당히 부실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까지도 들리더군요. TV 볼륨도 크게 못 틀 뿐더러 내 돈내고 사는 내 생활공간에서
전화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평소 그렇게 살아오며 별 생각을 안했지만서도 정작 그 기사를 읽고 나니
돈이 없으니 프라이버시도 없이 살아라..란 말로 들리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방음시설로 인해 화재
비상벨 소리를 못들어 희생이 커졌다..는 논리자체를 무시하려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기자분들이 그렇게 신나서 떠들어대고 있는 전국 엄청난 수의 '부실한 시설을 갖춘' 고시원들에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절박한 심정과 그만큼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학생들과, 직장인들과, 기러기
아빠들이 살고 있다는것도 좀 생각해줬으면 안되는걸까요...

물론 고시원 시설이 열악한건 잘 압니다. 그게 '관리 단속 부실'로 인한 거란 말도 동의합니다.
저도 그 뉴스보고 제가 사는곳을 둘러보니 여기도 마찬가지로 불한번 나면 대책없이 인명피해가
날 거란 거.. 알게되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어쩌겠습니까? 불 나면 죽을수도 있으니 여기서 나갑니까?
더 좋은 원룸 얻어 나가야 합니까? ...하아.. 누가 모릅니까 그걸.. 돈이 있으면 왜 여기 살겠습니까..

제 한풀이 하자는건 아닙니다. 저 아직 젊습니다. 아니 어립니다. 저야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며 젊을때
고생 좀 하자고 봐도 되지만, 결혼한 아내와 자식들까지 친척집에 맡겨놓고 이런 쪽방에서 버티는 분들,
제 앞방 옆방에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처자식과 생이별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래도 돈 벌어 내년엔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그리며 사는 분들입니다.

화재 예방? 좋습니다. 인명사고를 예방한다? 좋습니다. 하지만 기자든 정부든 네이버리플러든 제발 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은 물만난 고기처럼 단속이 없으니
이렇다, 단속 없는 몇십년동안 고시원이 이렇게 불어났다 떠들어대지만 왜 그럼 그동안 천정부지로
치솟은 강남 집값은 문제 삼지 않는겁니까? 왜 돈벌려면 서울 아니면 안되도록 지방 다 죽이고
모든 문화, 경제가 서울에만 집중된 사태는 문제 삼지 않는겁니까? 고향버리고 서울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 왜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먹으며 가족과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가족과 떨어져 살며
고시원 사는 사람들이라고 왜 가족과 함께 따뜻한 내 집에서 잠들고 싶지 않겠습니까...
화제를 막고 이런 사람들이 위험속에 살아가는걸 막자는 건 찬성합니다. 하지만 왜 단속 이전의
근본적인 대안제시는 하지 않는겁니까.. 왜 이사람들이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겁니까.. 단속 단속 높이 외치는 기자들과 울분에 차 "고시원 전부
문닫게 해야해!" 외치는 리플러분들의 심정, 이번 사고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경악과
분노로 인한것임은 잘 알지만 그럼 단속으로 고시원 수를 줄이면 이 사람들이 어디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 불안한 고시원들은 모두 문닫고 거기 살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어찌 살든 알바 없고 어쨌든 '대통령은 청와대에 계시고 세상은 평안하도다'..하며 TV에서 큰 사고 뉴스
안보고 살겠다...는 것 밖에 안됩니다. 뭐, 서울집값 문제나 수도권 집중화 문제보다는 고시원 단속이
훨씬 쉽고 간단한 일일테니 말이죠.

후우.. 저도 안전하지 못한 전국 고시원들이 조금더 안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야 젊을때 고생좀 해보자고 사서 고생한다쳐도, 정말 절박한 상황속에서도 소박한 꿈을 품고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좀더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방세 오를 걱정에, 새 자취방 구하기가 어려워질거란 걱정에 현재의 이런 불안전한 고시원 시설들을
그냥 놔두자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뒤늦게나마 단속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거 저도 찬성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의,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관심갖는 이가 없고, 더이상 우리나라에서 사고뉴스좀 안봤으면 좋겠다는 투의
무표정한 기자들과, 냉정한 일부 리플러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하네요...
집값이네 수도권 집중화네.. 이런게 고시원 단속하는것 보다 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란걸
잘 알기 때문에 또 한숨만 나기도 하구요...

뭐... 모르겠습니다. 결국 또 결론은 언제나처럼 '한국의 고질병'이네, 한국이 다 그렇지 뭐...
사는게 다 그렇지 뭐.. 이런식이 되는군요.. 쩝, 뭐 어쨌든 어찌되든 모두들 어떻게든 계속 살겠지요..
살아있는한.. 다들 어떻게든 살지 않겠습니까..
여튼 오유인 여러분들도 열심히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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