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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얘기 나온김에.. 저도 한마디..
게시물ID : sisa_233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을즐..
추천 : 1
조회수 : 400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06/07/29 02:35:11
문제는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유없이 크다는 겁니다.
어째서 신입생은 선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을 (미친듯이)폭음해야하는 걸까요.
어째서 영업사원은 거래를 따내기 위해 상대회사 고위직과 (죽자사자) 퍼마셔야하는 걸까요. 
어째서 중요한 인간관계, 중요한 사업관계에 있어 술.. 그것도 폭음이 다리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술값이 싸기 때문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이성을 잃게 만드는 술이란 존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나약한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에 처했을때 술취함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잊으려 하곤 합니다.
이게 상당한 효과가 있기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러한 성향은 굳이 우리나라에만 있다기보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죠.
이런 상황에서 (물론 어려움을 술로 잊으려하는 행동을 옳다고 하는건 아닙니다만) 술값만 올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삶의 어려움의 깊이가 부유층보다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겁니다. 한국 술 소비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주 가격을 올린다면, 와인이네 양주네 마시는 고소득층보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당장 더 큰 영향을 미친단 것이죠.

물론 돈의 많고 적음이 인생의 고난의 적고 많음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내일 내 마누라, 내 자식 먹일것 걱정하는 샐러리맨과 최근에 산 주식이 떨어지는 걸 걱정하는 부유층의 고민 중 어느게 더 절박하고 공감갈런지는 자명할 것입니다.

문제는 술값보다, 술을 대신할 대안이 없는 한국의 풍토라고 봅니다. 초중고 교육은 고난에 직면했을때 그것을 맨정신으로 잘 감내하고 냉철히 해쳐나갈 수 있는 인격체를 길러낸다기보다 치열한 경쟁속에 국가나 기업같은 '집단'이 쓰다 버릴수 있는 부품조각을 만들어내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오죽하면 교육 담당한 곳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이겠습니까.. 우린 한사람의 인격체로써 기본 권리인 교육을 받은게 아니라 단순한 '자원'의 일부로 '개발'되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사회는 아직도 수직적인 계급구조를 가진채 기탄없는 의견나눔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불가능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직원,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 물론 자기보다 더 경험이 많고 연륜이 있는 이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아랫사람을 위압적으로 무시하고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대로 윗사람을 말이 안통한다고 무시하는 상황 속에서는 갈등 외에는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습니다. 대화도 있을수 없습니다. 적당한 술이 경계심을 무너뜨려 사람과 사람을 쉽게 친해지게 만드는 점은 저도 알지만, 모든 공식적인 자리에서 왜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나오는지는 이것으로 설명할수 있을겁니다. '대화로 친해질 자신들이 없으니' 친해지기 위한 통과의례로.. 서로 친해졌다고 생각할수 있기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술을 먹이는 거라고 말이죠.

이것이 왜 신입생 환영회, 신입사원 환영회가 거의 100% 술판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그리고 정기적으로 '회식'이라는 모든 조직 구성원에게 절대 개인적 사정이라는게 허용되지 않는 의식적인 행사가 술을 빼놓고 이뤄질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일 겁니다. 물론 이건 술의 나름 긍정적(?)인 요소를 극단적으로 해석한 케이스이겠지만 그보다는 신입생, 신입사원등의 '새내기'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친해지기 위해 꾸준히 공들여 부대끼는 작업이 단순히 '회사나 조직에 있어 마이너스'라는 관념에 의해 다른 갈등따위 없이 무조건 조직에 따라오라는 암묵적인 폭력의 일환입니다.

우리사회가 아직도 개인의 개성과 장점을 살리기보다 조직과 집단을 위해 개인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이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취미 생활이나 관심사를 위해 투자한 돈에 대해서는 오타쿠네 돈낭비네 말이 많으면서(물론 진짜 오타쿠.. 사회생활을 접고 거기에만 매달리는 사람을 이야기 한게 아닙니다. 회사생활 멀쩡히 잘하고 개인적인 인간관계도 잘 해나가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 취미생활에 돈을 투자하는 정상적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하룻밤 술값으로 날리는데 대해서는 훨씬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개인의 취향에 투자되는 돈은 낭비, 집단의 모임에 투자되는 돈은 합리적 소비라는 인식이지요.(물론 인간관계를 넓히는 일에 투자하는 돈은 분명 좋은 겁니다. 하지만 술자리가 인간관계를 넓게하는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이와 더불어 술을 대신할 만한 놀이문화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너무 적다는 것과,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전문성보다는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는 관념도 술을 부추기는 원인이지요. 아직도 많은 사업가, 기업가들이 자신의 회사에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을 '술에 취한채' 내리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의논과 결정으로 서로간에 프로페셔널한 협력관계를 만들기보다 하룻밤 진탕마신 술로 서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는 착각 속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협력관계를 만들고 있단 소리죠.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접대를 받아야 같이 일하려들고, 접대를 해야만 같이 일할수 있는 상황속에 살고 있습니다. 남들 다 그러니.. 당장 칼자루를 쥔 입장이 그걸 원하니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지만, 이는 우선 대기업을 비롯한 칼자루 쥔 쪽이 먼저 솔선수범해 해체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제가 대기업들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회 전반적인 악습들을 해결할 대부분의 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 것이죠. 어음거래라던가..이런것들처럼..)

후.. 여튼 쓰고보니 술문제도 대한민국이 현재 겪고 있는 많은 어려운 문제들 처럼 한가지 해결책으로 명확하게 매듭이 풀릴만한 사항은 아니군요..
하지만 젊은층에서부터 서서히 인식을 바꾸고 행동으로 나선다면 불가능할거라고만은 생각지 않습니다. 저도 물론 술을 자주 마시고 즐기지만, 더이상 술을 의무감과 부담감속에 마시지 말고, 술을 마시는 이가 마시지 않는 이를 무시하려들지 말고, 술을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주량이 얼마인지.. 술 쎄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짓거리 하지 말고, 술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나온 김에 우리 의식있는 오유인들부터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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