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톰슨 준위.
미라이 학살 사건 당시 24세.
미라이 학살사건은 1968년 3월 수백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미군들에게 학살당한 사건이다. 이 당시 정찰 비행 중이던 헬기 조종사 톰슨 준위는 민간인 시체들 옆의 미군들을 목격하고 기체를 착륙시킨 후 소대장 캘리 소위에게 질문했다
톰슨 : 이 사람들은 누군데 죽인 겁니까?
캘리 소위 : 나는 명령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톰슨 : 누구 명령을?
캘리 소위 : 그냥 명령...
톰슨 : 이 사람들은 비무장한 민간인들 아닙니까?
캘리 소위 : 이것 봐, 여기는 내가 할 일이지 자네와 상관 없는 일이다.
톰슨 : 일을 제대로 하는 군요.
캘리 소위 : 꺼지고 니가 할 일이나 하라고!
톰슨 : 두고 봅시다.
헬기를 이륙 시킨 후 다시 전장을 둘러 보던 중 승무원 안드로에타 병장이 미군으로부터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목격. 더 이상 참을수 없던 톰슨 준위는 헬기를 도망치는 민간인들과 미군들 사이에 착륙시켰다.
헬기에서 내리며 승무원에게 M60 기관총을 미군들에게 겨누라고 톰슨 준위는 명령하였다. 만약 미군들이 민간인들이나 자기에게 총을 쏠 경우 즉각 응사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민간인들을 도피 시키고. 시체들 사이에서 피범벅으로 살아있던 4살 여아를 구조하였다.
귀환 후 즉시 상관에게 목격담을 보고하였고 그와 다른 운동가들의 긴 노력끝에 사건은 군범회의에 넘겨지고 캘리 소대장은 1971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1974년 닉슨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그 당시 헬기 승무원 2명 중 안드로에타 병장은 3주후 전사하였고 톰슨 준위와 생존한 승무원 코번 병장은 1998년 미라이를 방문하여 그 때 구해주었던 민간인들과 재회하였다. 2006년 62세의 나이로 별세.
당시 한 군인의 증언에 의하면 미라이 같은 학살 사건은 베트남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어났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톰슨 준위와 다른 운동가들에 의해서 미라이 학살 사건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