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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후기를 몇 가지 이유로 말해볼게요.
1 괴물이 무섭다
<기묘한 이야기>가 판타지물로서 독보적인 점은 괴물 캐릭터가 정말 무섭고 징그럽다는 사실이다. 괴물이 시종일관 일관적으로 나쁘고 본능적이고 지능적이다. 물리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오컬트적인 요소도 있다. 특히 아이들이 나온다고 해서 수위가 낮지 않고 잔인하리만큼 무섭다(CG의 힘!). 에일리언의 그것에 비견할만하다. 그게 자칫 성장스토리로만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SF호러 시리즈로 각인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라고 본다.
2 밀리 바비 브라운의 ‘일레븐’ 캐릭터가 독보적이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를 데려다가 조직이나 국가의 인간병기로 만드는 이야기는 이젠 흔하다. 그런 비슷한 캐릭터들 속에서도 밀리 바비 브라운의 ‘일레븐’이 돋보이는 건 어린아이의 유약함과 순수함과 초능력자로서 물리적 파워는 물론 정신적 파워를 모두 가진 일당백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일레븐은 ‘파파’라고 부르는 과학자에게 의존하면서도 그를 두려워하는데 그런 일레븐의 모습은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레이를 떠올리게 한다. 상처받은 고슴도치처럼 타인을 믿지 못하고 바짝 털을 곤두세우고 다니던 엘은 마이클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열게 된다.
일레븐은 시즌1과 시즌2에서는 유일한 종결자인데 시즌3에서는 종결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더프 형제가 그녀의 짐을 덜어줌과 동시에 다른 캐릭터들의 역할을 극대치로 끌어올린다. 특히 엘이 초능력을 쓰지 못하게 되는 설정으로 끝나는데 실패를 거듭하는 엘의 표정에선 불안감이 느껴진다. 시즌4에서 그런 엘이 러시아 감옥에 갖힌 호퍼를 구해낼 수 있을까?
3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어른들이 바보가 아니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나 드라마 중에선 어른을 멍청한 악역으로만 그리거나 아이들의 조언을 무시하는 무신경한 존재로 그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이들이 어른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결하며 영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끝난다. 그런 스토리라인은 결국 아동들이 소비하기 좋은 ‘아동드라마’로 그치게 된다. <기묘한 이야기>는 어른들이 멍청한 악역이나 아이들을 돕는 조력자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들과 어른이 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해 어떤 접점에서 조우하고, 결국 모두가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가 다르고 상대할 대상이 다르지만 모두의 지향점은 하나다. 어른과 아이가 다 함께 필사적으로 문제에 매달리고 힘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대표적인 어른이 조이스 바이어스와 짐 호퍼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조이스다. 조이스는 괴물에 대한 감각이 ‘촉이 좋다’의 수준이 아니라 ‘신기가 있는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인데 아이들의 말을 존중하고 아이 같은 탐험심이 있다. 짐 호퍼라는 캐릭터도 정말 매력 있다. 성질이 더럽고 무대포 정신이 있지만 오랜 수사관으로서의 판단력으로 사건에 접근해간다. 신중하고 책임감 있고 귀여움까지 갖춘 볼매 캐릭터다. 두 사람은 사태의 막중함을 알기에 눈물겨울 정도로 필사적이다. 또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