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8일 오전 11시경이었다. 삼십대 말쯤의 초라한 모습을 한 여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찾아왔다. 튀어나온 볼 위에 파묻힌 듯한 작은 눈에서는 만만치 않은 삶의 곡절과 강인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게 아니라 잠시 상담만 하러 왔습니다. 되나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뭔가 자신이 닥친 현실에 대해 정밀한 재 감정을 시도하려는 태도였다.
“어떻게 저를 알고 찾아오셨죠?”
나 역시 그녀의 경로를 탐색 했다. 단순한 지식검색기계가 되기 싫었다.
“저도 이런 말 하는 게 어떤지 모르는데 감옥 안에 있는 다른 살인범들이 가보라고 소개를 해서 왔어요.”
다른 살인범이란 말을 쓰는 걸 보면 그녀가 살인에 관련됐다는 얘기다. 그리고 살인범이 다른 살인범에게 변호사인 나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따져 보니까 이럭저럭 살인사건을 많이도 맡았다. 사건마다 수면 밑의 빙산 같은 내용들이 많기도 많았다. 그 여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살인범이 소개한 게 찝찝하지만 그냥 한번 와 본 겁니다. 미안합니다.”
그 정도면 나를 선임할 의사는 없지만 솔직한 태도였다.
“알겠습니다. 상담은 정확히 해 드리겠습니다. 유리하던 불리하던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 한 걸 정직하게 말씀드리죠. 아마 먼 훗날 실질적인 도움이 된 걸 아실 겁니다.”
어느 분야건 일단 정확한 진단이 중요했다. 브로커들의 사기가 법조계에도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그 여자는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치듯 조심스럽게 앉았다. 긴장한 그녀의 얼굴에서 초조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저 혹시 지난해 재벌부인이 판사사위하고 사귄다는 여대생을 청부살인한 사건 아세요? 여대생이 공기총에 맞아 죽었는데요. 텔레비전하고 신문에 많이 났는데... 그 범인중의 한 사람이 제 남편입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간신히 입을 열었다가는 말끝을 흐렸다. 며칠 전 뉴스와 2580 시사프로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두 사내가 누런 점퍼를 푹 뒤집어 쓴 채 봉고차에서 내려 허리를 구부리고 경찰서문을 향해 다급히 가고 있었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쉬가 그들의 등짝에 가시같이 가서 박히고 있었다. 그들 두 명은 한 재벌부인으로부터 청부를 받고 여대생을 살해한 후 해외로 도주했었다. 재벌과 판사, 치정과 청부살인이란 우리사회 상부 층의 정신적 빈혈 증세를 반영한 사건이었다. 시사프로인 2580에서 재벌부인에게 전화로 묻는 장면이 나왔다. 회장부인은 침착한 어조로 담당 피디를 타이르면서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말도 안 되죠. 제가 어떻게 살인을 교사할 수 있겠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입니다.”
잔잔한 어조와 내세우는 논리에서 난 완전범죄를 시도한다는 냄새를 느꼈다. 음지의 세계에서 살인도 하나의 독특한 돈벌이였다. 의뢰인 중에는 악덕기업인이나 사이비교주, 부패 정치인들이 많았다. 걸리면 사후처리 방법도 일정했다. 변호사를 사고 관료들을 매수했다. 감옥 사는 값을 충분히 치르면 범인도 입을 닫았다. 그러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졌다. 앞에서 잠시 침묵하던 그 여자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도 초등학생하고 중학생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그 죽은 여대생 집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남편이지만 극형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조금만 더 절제를 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여튼 모든 게 남편의 잘못입니다.”
그녀는 간단히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보험회사 직원이던 그녀는 한 고객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선을 보고 바로 결혼했다. 남편 집안의 고모부는 재벌이라고 했다. 여러 계열회사와 호텔을 가지고 있고 제주도 등 곳곳에 땅도 많았다. IMF 외환위기의 파도는 그녀 가족을 단숨에 쓸어버렸다. 지하 셋방에서 그녀는 녹즙배달을 하고 남편은 가방공장에 나갔다. 나중에는 고모인 회장부인의 운전기사를 했다.
회장부인의 기사를 하는 남편의 얼굴은 항상 수심이 가득했다. 곤란한 일들만 시킨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판사 사위를 미행하는 게 남편의 일이라고 했다. 아침에 판사 뒤를 따라 같이 출근하고 하루 종일 법원 앞에서 죽치다가 저녁에 돌아가 보고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회장부인은 매번 화를 벌컥 냈다고 했다. 회장부인은 한번 누구를 의심하면 그걸 푸는 법이 없었다. 회장부인은 병적으로 사위를 의심했다. 심지어 딸 내외의 방에 도청장치까지 하고 감시했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마담뚜의 소개로 딸을 결혼시킬 때 괴 전화가 왔었다. 누군가 판사사위의 과거를 제보했다는 것이다.
회장부인은 현직형사, 심부름 센터 등 수십 명을 고용하고 다시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로 그녀의 남편을 부렸다. 그리고 회장부인은 다시 종종 현장에 나타나 남편을 감시하는 이중, 삼중의 망을 구축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잠도 못 잤다. 회장부인한테서 수시로 지시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은 아내에게까지 비밀로 전화를 받곤 했다. 그녀가 마당에서 김장을 하던 어느 날 오후 남편은 통장 하나를 그녀에게 던져 주고는 황급하게 출국했다. 그 직후 검단산 기슭에 묻혀있는 여대생 시체를 한 등산객이 발견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2003년 11월 25일.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회장부인과 주눅 든 두 명의 남자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부인은 오십대 말의 나이인데도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있었다. 계란형의 얼굴에 검은 눈동자였다. 그녀는 베이지색의 고급 쟈켓을 입고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회장 측의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대형 로펌에서 나온 거물급 변호사들이 회장부인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 옆에 곱슬머리의 남자가 안경 뒤로 눈을 질끈 감은 채 뭔가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그 옆은 살인청부를 맡았던 킬러였다. 짧은 머리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삼십대 말의 남자였다. 그의 눈에서 알지 못할 섬뜩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진공상태 같은 법정분위기였다. 돋보기를 코에 걸친 재판장이 기록을 읽다가 킬러를 내려다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
“여기 기록을 보니까 총알이 네발이나 귀밑의 같은 곳을 관통했네?”
프로급 살인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재판장이 말을 계속했다.
“이 정도면 총구를 머리통에 들이대고 계속 갈겨 확인사살을 한 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나?”
재판장이 킬러를 쏘아봤다.
“아, 아닙니다. 일 미터 이상 물러서서 고개를 돌리고 쐈습니다.”
킬러도 뭔가 감지한 듯 완연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안보고 쐈는데도 그렇게 잘 쏘나?”
재판장이 다시 물었다. 그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처음에 그 여대생 얼굴을 보고 한번은 총구를 겨냥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두발 째부터는 보지 않고 쐈습니다.”
첫발은 이마를 관통해서 총알이 뇌에 박혀 있었다. 그 말을 듣던 방청석 구석의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는 얼굴이 백짓장 같이 창백해 있었다. 죽은 딸의 복수를 위해 그는 직장까지 팽개치고 혼자 범인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고 했다. 그 앞으로는 만약에 대비해 교도관들로 벽이 쳐져 있었다.
“죽은 여대생의 팔뼈가 세 동강이 나 있던데 왜 그랬지?”
재판장이 물었다. 여대생은 죽기 직전에 극도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킬러가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가다가 집어 던졌나? 그래서 팔뼈가 부러졌나?”
재판장이 다그쳤다.
“아닙니다. 죽이기 전 땅에 내려놓을 때조차 안 듯이 내려놨습니다요.”
킬러가 안절부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안 듯이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때 움직였어? 이미 죽어있었어?”
재판장은 짐승몰이를 하듯 킬러를 여유 있게 쫓고 있었다.
“그 여대생을 푸대 자루 속에 넣어 산으로 메고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 잠시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그때 발이 꼼지락거리는 걸 봤습니다요.”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습디까?”
재판장이 물었다.
“입에 청 테이프를 붙여 놔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죽여주는데 얼마를 받기로 했지?”
“저는 2억원을 달라고 하고 사모님은 1억5천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그 중간금액인 1억7천5백만 원에 낙찰이 됐습니다요.”
“살인을 청부받은 게 그거 하난가?”
“아닙니다. 그 전에 두 건을 더 청부 받았었는데 실패해서 사례비를 못 받았습니다.”
회장부인의 섬뜩한 다른 살인청부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재판장님 먼저 이쪽에서 모두진술을 해야겠습니다.”
그때 회장 부인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모두진술은 국민의 권리였다. 그런데 변호사를 이십년 해오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직대통령 재판 때 보고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법정에서 그 절차는 생략됐다.
“하시죠.”
재판장이 허락했다. 경력을 나타내는 듯 점잖은 은발의 변호사가 준비해 온 글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는 회장부인의 법정변호사중 대표였다.
“이 사건에서 명백한 건 여대생이 살해됐다는 사실 뿐입니다. 회장부인은 살인을 해 달라고 교사를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또 잃을 것이 많은 대기업 회장의 부인이 그런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부탁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변호사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여유 있게 계속했다.
“회장부인이 했다는 살인교사의 증거는 실제로 살인을 한 두 사람의 증언 밖에는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회장부인이 살인을 지시했다고 하면서 물귀신처럼 이 사건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고 늘어지면 재력이 있는 회장부인이 죽은 여대생의 가족과 합의를 해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이 감경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회장부인이 그 여대생의 미행을 부탁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살인범인 두 사람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납치를 결정했습니다. 납치 후 가혹행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동강난 팔뼈가 그 정황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여대생을 죽이고 해외로 도피한 것입니다. 그리고 체포가 되자 회장부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회장부인의 얼굴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